※ MBTI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MBTI를 쓴 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끌기 위함일 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곱슬머리의 그와 함께한 스타벅스 기장임랑원점.
01.이야기
“난 아직도 못 참아.
꽃을 받을 때 그 기분, 어색하지 사실은
한때는 내게 말이야,
사치였으니 향기는
부러웠지, 꽃 피는
봄마저도 떠나가기를 바랐지.
난 시커먼 바닥 위를 걷고 있었으니 but anymore.”
래퍼 미란이의 노래 가사처럼 시커먼 바닥 위를 맨발로 걷고 있었다. 검은색 크레파스로 엉성하게 그린 듯한 그곳을 걷다가, 내가 아끼는 이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나도 신발 정도는 신어야겠다 싶어 깔끔한 운동화를 챙겨 신고선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보다 키가 큰 곱슬머리의 그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어느새 시커먼 바닥은 빛을 받는 모래밭이 되어 있었고, 옆에는 부산 임랑 해수욕장의 물살이 을씨년스럽게 굽이치고 있었다.
2월, 곱슬머리의 그와 나는 인적이 드문 부산 임랑 해수욕장의 모래사장 옆길을 걷고 있었다. 전날 저녁에 우리는 청춘들이 가득한 술집에서 고기 숙주 볶음과 소주를 실컷 주고받으며 먹었는데, 갑자기 곱슬머리의 그가 오늘 함께 있자고 말했더랬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함께 바다를 보러 갔다.
임랑 해수욕장에서 나는 감성에, 곱슬머리의 그는 유머에 취해 있었다. 맨발로 모래밭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잘도 찾아내면서 묘사하는데 어찌나 재밌던지깔깔 웃었다. 나는 사귀기 전부터 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했고, 곱슬머리의 그는 나의 말을 몇 차례 듣다가 이윽고 임랑 해수욕장에서 왜 바다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바다는 끝없이 이어지잖아.”
언젠가 글에도 쓴 말을 하자 곱슬머리의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바다는 끝없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 앞에서는 처음 말했다. 이상하거나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는 이야기라고 판단하면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나이기에, 그에게 바다는 끝없이 어쩌고 하는 추상적인 이야기를 한 건 내가 그와 꽤 친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곱슬머리의 그는 바다가 왜 끝이 없냐고 물었다. 곱슬머리야, 저기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봐. 넌 저 바다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니? 알 수 없잖아.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구구절절 설명하는 나를 빤히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너무 시적인 표현이야. 네가 한 말을 T처럼 반박할 수 있지만 그냥 네 말이 맞는 걸로 하자.”
비가 올 듯 먹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파도마저 하늘을 따라 평소보다 짙은 색이던 임랑 해수욕장. 게다가 눈앞의 바다 하나를 두고도 우리는 생각이 달랐지만, 바다가 예쁘든 안 예쁘든 우리의 성격이 다르든 안 다르든 그저 순간순간 특별하고 좋았다.내 이야기를 들어만 주어도 그가 참 좋았다.
임랑 해수욕장.
곱슬머리의 그는 임랑 해수욕장에서처럼, 내가 올해 번아웃 때문에 처음으로 일에 회의를 느꼈다는 이야기를 올해 읽은 책에서 나온 문구부터 언급하며 길게 설명했을 때도 진득하게 다 들어주었다. 심지어 자신의 생각과 해결 방법까지 일러주었다. 나의 생일에 대구로 여행을 갔을 때는 술을 과하게 마셔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몇 번이고 토하는 내 곁에 있어 주었다.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까 봐 마음을 붕대로 칭칭 감싸고 가면까지 쓴 내가 빼꼼히 생각을 드러낼 때마다 곱슬머리의 그는 다 들어주고 이해해 주었다. 단순하고 솔직한 성격에 팩트를 잘 끄집어내는 그이지만,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사랑하는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너한테는 좋은 사람이 될 거야.”
“너한테는 잘할 거야.”
“너한테는 화 안 낼 거야(이후 사귀면서 팩트는 몇 번 쏘아붙였다).”
“난 원래 이기적이지만 너한테는 안 그럴 거야.”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헤어질 때 차에서 내리기 전에도, 지난주에도, 어제도 말했다. 스스로 나쁘다고 하는 사람치고 진짜 나쁜 사람은 없지 않나?아니, 내가 그는 나쁘지 않다고 믿고 싶은 건가?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그가 신기했다. 나라면 실제로 이기적이라도 자신을 그리 칭하지는 못할 텐데.
마음속의 솔직할 수도, 무례할 수도 있는 생각을 I인 나는 함구할 때가 많다.내가 F로서 공감하고 좋은 말만 해주려는 습관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인지, 타인을 위하는 마음에서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다.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애써 묻어두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거나, 좋다며 장단을 맞춰주거나, 티가 나지 않게 다른 방향으로 고쳐주었다. 나도 인지하지 못한 똥고집 때문에 갑자기 열이 끓어올라서 화를 낼 때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자신의 나쁜 생각을 함구해서일까? 다른 이들이 나쁜 생각을 함구하는지 멋대로 추측하는 버릇이 있다. 누군가가 칭찬하면 표정은 멋쩍은 듯 웃지만 마음속에서는 칭찬이 진심일지 언제나 의심한다. 그렇기에 머리 회전도 빠른 편임에도 분위기, 말투, 표정을 보았을 때 입바른 소리라고 의심할 만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남자친구가 신기했다.
더 나아가 내가 애써 억누르던 솔직할 수도, 무례할 수도 있는 생각(나는 이를 ‘마음속의 악마’라고 자주 부른다)을 자유롭게 말하는 남자친구도 신기하고 좋았다. 남자친구의 행동이 옳든, 옳지 않든 손 안 대고 코 푸는 기분이 들면서 묘하게 후련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내 말은 절대 들을 리가 없는 사람에게도 나쁘게 말하지 못하거나 에둘러서 말하는 나와 달리 생각이 입술 끝에 달린 듯이 술술,거참 쉽게도 말한다.
차갑고 때로는 잔인하게 지적하면서도 수위 조절을 잘하고 유머로 능숙하게 승화시키는 그가 부러웠다. 나였다면 나쁜 소리를 한 것 같다며 종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 텐데. 나쁜 말을 해서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며 시답잖은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 아주 친해지기 전에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예의만 갖추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당연히 자신과 가까워지는 이는 줄어든다.
어제 전화하며 남자친구에게 말했더랬다.
“너는 가끔 굉장히 차가워 보이지만, 나한테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날 사랑하는 게 많이 느껴져.”
“그래, 내가 너 많이 사랑하지…”
네가 정말 나를 많이 사랑하는지, 그저 성격이 단순해서 본능대로 말하는 것인지.
더 나아가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는 말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네가 좋은 사람인지, 나는 좋은 사람인지, 이 사랑이 그저 환상인지, 현실감이 끼어 있는지는 당장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이것저것 재고 따지게 되는 30대에 "사랑한다", "너에게는 좋은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해주는 곱슬머리의 그에게, 매일매일 혼란을 자청하며 살아가는 나도 콕 자리를 잡고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고 싶다.
02. 추억
설날 때 사람이 가득한 카페에서. 이때 커피와...
디저트와 곱슬머리의 그가 있어서 행복했다.
밸런타인데이 때 써 준 쪽지. 오랜만에 보니 또 써주고 싶다.
03.정보와 추천
부산 임랑 해수욕장: 조용히 바다를 구경하기에 좋아요. 시기가 맞으면 모래밭에 앉아 있는 수많은 갈매기를 구경할 수 있어요. 주변의 길 이름도 '갈맷길'이에요.
스타벅스 기장임랑원점: 임랑 해수욕장과 아주 가까워요. 건물 한 채가 스타벅스인데, 실내가 좁다는 단점이 있지만 인테리어가 일반적인 스타벅스와 달라서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을 선사해 줘요. 커다란 스타벅스 베어리스타도 있어서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