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경 Jun 09. 2024

도쿄 비행깃값 120만 원의 정체 - 대한항공

<번외편> 30대 INFJ와 ESTP 커플, 일본 도쿄에 가다 (1)

<번외편> 30대 INFJ와 ESTP 커플, 일본 도쿄에 가다 (1)

30대 ESTP(남)/INFJ(여)의 일본 여행기입니다.



"무슨 일이든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

"우리의 관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다"


...이는 처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지만 막상 어떠한 관계의 시작점에 섰을 때는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연애 초반에 그저 사랑스러워만 보이는 연인이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인지 판단하기는 더욱더 어렵죠. 그저 과거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판단할 뿐이고, 내가 최선의 선택을 했으리라 믿을 뿐이고, 선택한 길을 최선을 다해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격과 언행이 정반대인 커플입니다. 크게는 투자에 관한 관점부터 작게는 메시지 답장을 어떻게, 얼마나 자주 보내야 하는지까지 생각이 참으로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인간관계가 참 신기하죠. 곱슬머리의 그(ESTP)와 제(INFJ)가 다르기에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그리 하여 숭숭 비어 있던 퍼즐들이 딱 맞춰지는 듯한 쾌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마음속에서 짜릿함이 느껴진달까요? (제가 며칠 전 "넌 짜릿해. 다른 사람과 만날 때가 물이라면 너는 콜라 같달까? 제로 콜라는 아니야!"라고 말하니 곱슬머리의 그가 "변태야!"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이게 왜?)


이번에는 홀로 여행 다니기 좋아하던 제가 곱슬머리의 그와 함께 변수 가득한 상황 속에 빠져서 때로는 즐겁게 놀기도, 때로는 허우적대기도 한 도쿄 여행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3월에 도쿄로 가면 되겠다!"


우리가 사귄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았을 때 곱슬머리의 그(ESTP)저(INFJ)에게 잔뜩 들뜬 표정으로 말을 건넸어요. 그때는 아직 코트를 입어야 했던 추운 1월이었죠.


저는 1월의 끄트머리에 일본 도쿄에 혼자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을 다녀온 후 김해 공항까지 그가 마중 나왔던지라 혹시나 오래 기다릴까 봐 캐리어를 얼른 챙기고, 그러면서도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화장도 확인하고 부랴부랴 뛰어 나갔더니 그가 많이 기다렸다고 징징대면서 얼른 부산 대연동에 만두전골을 먹으러 가자는 거예요. 오늘 같은 주말에 그쪽은 보나 마나 엄청나게 밀리겠다는 저의 예상대로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고, 그는 한 손을 운전대, 한 손을 저에게 둔 채로, 저는 그의 한 손을 꼭 잡은 채로 앉아 있었어요. 그때 그가 자신과 도쿄 여행을 가자더군요.


도쿄에서 부산으로 돌아온 지 세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이 상황에서 두 달 뒤에 자신과 도쿄로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그가 그저 신기했습니다. 우리는 이때 사귄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걸요. 심지어 이날이 정식으로 첫 데이트를 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전 남자친구와도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해외여행을 함께 갔는데 이제 친해지기 시작한 곱슬머리의 그와 함께 해외여행이라니, 좋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승낙하기도 거절하기도 모호해서 농담처럼 넘기면서 웃었습니다. 아직 좋아하는 사람과 차 안에 있는 것조차 어색하고 긴장되어 손에 땀이 날 정도인데... 원래 제가 조금 다한증이기는 해요.


"넌 손에 왜 이렇게 땀이 많이 나? 축축한데?!"


그는 저에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어요. (며칠 전에 이때의 일을 얘기하니 자신이 이런 말을 한 것도 기억이 안 난다네요. 요즘에는 제가 긴장해서 손에 땀을 흘리면 즐거워하면서 놀립니다. 아니, 이걸 왜?)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갈색 머리에 어제 한 파마가 어울리는 그, 스몰토크 전문가처럼 쉴 틈 없이 말을 하는 그, 꽉 막힌 도로, 그가 좋은 저, 긴장되어서 손에 땀을 흘리는 저, 일본 여행 얘기, 아오. 머릿속이 새하얘졌어요.





'원하는 걸 얻으려면 머릿속을 비우고 뛰어들어라'. 연애 초반에 그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함께하자고 했을 때 머릿속에서 되뇌던 말입니다. 그와의 사랑을 이루려면 머리를 비우고 뛰어들어야겠죠. 제가 좋아하는 일본 여행과 그의 조합을 놓칠 수는 없어 일본 도쿄에 그와 가기로 결정했어요. 오전에는 출국하기 싫다는 그의 말에 오후 출발 비행기를 보았더니 대한항공이 있었고, 비행기 티켓값은 두 명 합해서 120만 원이었어요.


평소에 제주항공에서 평일 40만 원대 티켓을 자주 구매하던 저였기에 가격에 놀랐어요. 하지만 여행을 자주 가는 친구에게 말하니, 한창 일본 환율이 낮아서 여행 가는 사람이 많은 바람에 부르는 게 값인 비행기 티켓의 가격이 이 정도일 수도 있다더군요.


당시 저는 곱슬머리 그에게 돈쭐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SNS에서 본 연애 초반에 자신의 사랑을 편지를 써서 보여준다는 INFJ와 돈으로 보여준다는 ESTP의 이야기를 따라 할 생각도 없었거늘, 저는 실제로 그에게 편지를 자주 써주었고 그는 저에게 돈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했습니다.

향수, 옷, 케이크, 대구 여행에서 사용한 비용 등등... 실제로 감사했고 그가 좋았지만 마음 한쪽은 무거웠어요.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 싶은 성격인지라 언제 보답해야 하나 고민이었거든요. 머릿속에서는 그가 저에게 해준 것들의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저도 모르게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몇 주 전에 연인과 후쿠오카로 여행을 떠나게 되어 료칸 등의 비용을 시원하게 지르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저도 무거운 마음을 떨쳐내고자 비행기 티켓을 시원하게 질렀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소시민인 저에게 낮은 가격은 결코 아니었어요. 일본어 번역가(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돈 관리까지 직접 하는 저였기에 머릿속 이성이 저에게 이렇게 외치는 듯했습니다. "김연경 사장님!! 정신 차려!! 1월에도 일본 여행 다녀왔잖아! 돈 아껴!"


이성의 외침이 신경 쓰였지만 그에게 받은 게 많은지라 돈을 쓰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이왕 티켓을 샀으니 곱슬머리의 그와 유쾌하고 즐겁게 여행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랐죠. 다행히, 돈을 들인 만큼 그와의 여행은 지금도 저를 웃음 짓게 하네요.


<2편으로 이어집니다>



ps. 비행기 티켓값을 제가 결제하고 호텔비와 일본에서 사용한 비용을 그가 냈는데, 결과적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정산해 보니(저는 항상 가계부를 씁니다) 그가 돈을 더 많이 썼더라고요... 결국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하고 제가 더 받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곱슬머리의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연인 간에 돈 얘기하기를 어려워하시는 분도 많고, 계산적으로 보일까 봐 신경도 쓰이고, 그와 저는 돈 씀씀이도 다른지라 고민이 많았는데요.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맞춰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돈을 너무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 즐거운 여행을 그가 제안하기도 했고, 저도 더 수월하게 소비나 저축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아직 종착점은 보이지 않고 갈 길은 멀지만요.


ps2. ESTP인 곱슬머리의 그는 "가서 정하자"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해외여행에서도 P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해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그가 몇 년 전 워킹 비자로 호주에 홀로 갔을 때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서, 도착한 당일 헤매다가 처음 본 한국인의 집에서 묵었다고 해요. 무계획이었지만 해외에서 불안함은 안고 있었는지 그 한국인이 라면을 끓여주고 잘해주어도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긴장했다고 해요. 무계획이더라도 현지에서까지 '무(無)', 아무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는 일본에서도 2년 정도 살았는데요. 처음 일본에 갈 때는 계획 없이 달랑 50만 원만 들고 가는 바람에 굉장히 고생했다고 해요. 그럼에도 현지에서 잘 스며들어서 생활했다니 전지적 여자친구의 시점에서 신기하고도 기특합니다. 경험해 보신 분은 아실 거예요. 계획을 잔뜩 세우고도 해외에서는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물론 해외 생활에서 실패했든, 성공했든 모든 이의 도전은 훌륭합니다.




<번외편> 30대 INFJ와 ESTP 커플, 일본 도쿄에 가다

1.도쿄 비행깃값 120만 원의 정체 - 대한항공

2.호텔 이중 결제의 정체 - 발리안 리조트

3.4일, 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 도쿄 나리타 익스프레스

4.목표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 - 비 오는 신주쿠역

5.그의 추억과 술 취한 일본인 - 이케부쿠로 토리키조쿠

6.드러난 INFJ의 이중인격 - 도쿄 디즈니 씨(1)

7.드러난 INFJ의 이중인격 - 도쿄 디즈니 씨(2)

8.일본 슈크림 같은 남자와 도쿄에 - 이케부쿠로

9.일본 벚꽃처럼 진한 우리 - 신주쿠 교엔

10.크리드 카미나 오 드 퍼퓸 - 신주쿠 루미네 백화점

11.이 남자와 사귀려면 도쿄로 가라 - 신주쿠 스시잔마이

12.깨진 휴대폰 액정과 함께 깨진 이성 - 규카츠 이로하, 블루보틀

13.우리 좀 친해졌다!



※ MBTI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MBTI를 쓴 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끌기 위함일 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30대연애 #30대 #도쿄 #번역 #MBTI #INFJ여자 #ESTP남자 #결혼 #도쿄여행 #연애에세이 #연애이야기 #INFJ #ESTP #도쿄비행기 #대한항공


김연경 번역가: https://linktr.ee/linakim_8000


작가의 이전글 잠깐 휘슬 불기, 여름편 중간 점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