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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Jun 16. 2024

호텔 이중 결제의 정체 - 발리안 리조트

<번외편> 30대 INFJ와 ESTP 커플, 일본 도쿄에 가다 (2)

<번외편> 30대 INFJ와 ESTP 커플, 일본 도쿄에 가다 (2)

30대 ESTP(남)/INFJ(여)의 일본 여행기입니다.

※ MBTI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MBTI를 쓴 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끌기 위함일 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호텔 발리안 리조트.

<발단>


일본 도쿄로 떠나기 3주 전, 우리는 곱슬머리의 그가 좋아하는 부산 서면 베르크로스터스 카페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도쿄를 대표하는 공원인 신주쿠교엔의 입장권, 야경이 멋진 시부야 스카이 입장권, 놀이공원 디즈니 시 입장권... 도쿄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예매해야 할 것들이 많았기에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다.


카페 1층에서 직접 내린 드립 커피와 쿠키를 받아서 새하얀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2층에 올라왔을 때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는데, 여행 계획을 짜다 보니 어느새 우리를 포함해 소수의 인원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도쿄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각자의 성향이 묻어났다.


곱슬머리의 그(ESTP): "첫날 나리타 공항에 늦은 시간에 도착하니까 신주쿠 잇푸도 라멘에서 라멘만 먹고 호텔에서 쉬자. 그리고 둘째 날에는 디즈니 시에 가고, 셋째 날에 신주쿠교엔에 가는 거야."

나(INFJ): "응. 알겠어. (공항에 내리면 오후 8시라서 티켓 판매소는 문을 닫았을 텐데 키오스크에서 잘 구매할 수 있을지, 가게는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지 알아본다)"

-

나(INFJ): "도쿄 디즈니 시 티켓은 클룩 앱에서 사면 더 싸던데..."

곱슬머리의 그(ESTP): "그래? 그럼 내가 돈 보내줄게. 바로 결제해!"

-

나(INFJ): "신주쿠교엔은 우리가 가는 날부터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나 봐. 벚꽃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몰리니까 이렇게 하나 본데? 홈페이지에서 결제해야 해."

곱슬머리의 그(ESTP): "헉, 정말?! 지금 바로 결제해! (몇 초 뒤...) 결제했어? 어떻게 됐어??"

나(INFJ): "홈페이지가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읽느라 시간이 걸려... 잠시 기다려..."

곱슬머리의 그(ESTP): "휴, 미리 알아서 다행이다... 역시 넌 최고야!"


가깝지만 남인 그와 여행 계획을 짜면서 불화가 생길까 봐 걱정했다. 여행 스타일이 달라서 싸우는 사람들을 많이 봤으므로. 다행히도 그와는 얘기가 잘 통했다. 어떠한 관광지를 방문할지 청사진은 그가 제시하고 세세한 부분, 저렴하게 이용하는 법, 가성비 좋게 여행하는 법은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그가 먼저 같이 가고 싶은 곳을 말해준 덕분에 계획의 큰 틀을 빨리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노션이라는 계획 관리 앱에 방문할 곳과 대략적인 시간, 특이 사항, 예상 금액을 작성해 두었고 각자 사용한 돈도 정리해서 적어두었다.


자세한 사항은 "가서 결정하자"라고 말하는 그가 너무 빡빡하게 느낄까 봐 평소 혼자 여행할 때보다 느슨하게 준비했는데, 막상 여행을 다녀오니 다음엔 그의 눈치를 보지 말고 여행 정보를 더 자세히 조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관광지 정보를 알아보지 않아서 돈을 더 쓴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나 계획에 함몰되지는 않아야 했다. 무엇보다 그와 '즐겁게' 여행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했다. 무슨 일이든지 즐거움이 전제가 되면 훨씬 행복해지니까.




<전개>


많은 예약 중에서도 단연 '호텔 예약'이 중요했다. 3박 동안 편안하게 쉴 수 있고 관광지에 이동하기 쉬우며 가격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곳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주말이 아님에도, 넓은 객실이 아님에도 1박에 20만 원~30만 원을 넘나드는 말 그대로 '살 떨리는' 신주쿠 쪽 호텔을 보다가 근처 동네인 이케부쿠로의 호텔로 시선을 옮겼다. 평이 좋고, 곱슬머리의 그도 알고 있으며, 깔끔한 이케부쿠로의 호텔을 예약했다.


아고다에는 바로 결제되지 않고 나중에 진행되는 '예약 결제'라는 서비스가 있다. 하지만 왜일까? 스마트폰 화면을 끄면서 며칠 후에 결제된다고 말하는 그를 보는데 갑자기 머리와 목 부분이 서늘해지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언가 불길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이러한 기분이 드는데(일종의 통찰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곱슬머리의 그가 큰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과도한 걱정이라고 나 자신을 달래고 불안감은 잊기로 했다.




<위기>


소소한 위기의 시작은 데이트에서 당황한 그였다. 얼마 후 데이트하고 있었는데, 그가 아고다 앱에서 호텔 예약 내역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다그치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다. 내가 그를 사랑해서인지, 세심하지 않을 때가 있는 그의 성격을 이미 파악해서인지 알 길은 없다. 나는 예약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으니 다시 호텔을 찾자고 했고, 더 비싸진 호텔들을 보다가 그나마 가격이 적당한 이케부쿠로의 발리안 리조트라는 호텔을 예약했다.


며칠 후. 소소한 위기의 클라이맥스는 오전에 걸려 온 그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 곱슬머리의 그는 이날 새벽 시간, 그러니까 전화하기 몇 시간 전에 예약 내역을 찾을 수 없던 첫 번째 호텔의 비용이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그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호텔을 비회원으로 예매했지만 그 사실을 잊어서 나중에 로그인한 후 예약 내역을 확인했을 때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결국 즉시 결제한 두 번째 호텔(발리안 리조트)의 돈도 빠져나가고, 비회원으로 예매한 첫 번째 호텔의 돈도 홀랑 빠져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도 나는 그냥 터질 일이 터졌다는 생각만 들고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사실 비회원으로 결제했고 이를 잊었다는 것부터 나로서는 절대 저지르지 않을 듯한 실수여서 오히려 놀려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났다. 물론 간밤에 몇십만 원이 추가로 결제된 그를 실제로 놀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날 나에게 전화한 후 그는 아고다 호텔 취소 방법을 일본 호텔과 아고다에 바삐 문의했고, 다행히 비회원으로 결제한 첫 번째 호텔의 예약을 취소했다. 일련의 취소 과정을 진행하면서 꽤 마음을 졸였는지 그는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나에게 종알종알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그가 조금 더 안정을 되찾도록 위로와 칭찬의 말을 끊임없이 던졌다. 곱슬머리야, 놀랐을 텐데 잘했네. 곱슬머리야, 다행이다.




<결말>


이때 첫 번째 호텔이 별 탈 없이 취소되었고, 우리가 최종적으로 방문한 발리안 리조트의 어메니티가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며 깔끔해서 무척 만족했고, 그와의 일본 여행을 참으로 즐겁게 마무리한 덕분에 호텔 이중 결제 사건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역시 여행은 좌충우돌해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다.


'사실 비회원으로 결제했고 이를 잊었다는 것부터 나로서는 절대 저지르지 않을 듯한 실수여서'라고 앞에 언급했다. 실수한 그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와 내가 어떨 때 실수를 저지르는지는 꽤 다른 것 같다.


비단 실수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그와 이야기하면 생각이 다르다고 이따금 깨닫는다. 소소한 예로 얼마 전 백화점 주차장에 주차하고 쇼핑할 때도,


나(INFJ): 자기야. 그거 살 때 주차 정보 알려주는 거 잊지 마. 주차 요금 할인받게.

곱슬머리의 그(ESTP): 주차 요금 그 돈 조금 나오는 거 그냥 내지 뭐. (그래도 내가 말한 대로 주차 등록은 해준다)


그와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한숨이면 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대화지만 적은 돈이라도 줄여보려는 나와 적은 돈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지 않으려는 그의 경제관념이 드러난다. 경제관념뿐만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겨우 이해하거나 되묻는 일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와 있을 때 스펀지가 된다. 나에게는 부족한 그의 경제 지식과 대범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배운다. 곱슬머리의 그 또한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성격을 바꾸고 싶어"라는 나의 말에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데 왜 그렇게 되려는 거지? 이해가 안 되네??'라고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최대한 골똘히 생각하고 나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천만다행히도 우리는 서로의 '다른 부분'을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데 쓰는 것 같다. 내가 일본 여행을 가기 전에 계획을 짜고 정보를 조사해서 도움이 되려고 하고, 곱슬머리의 그가 도쿄에서 최대한 날 즐겁게 해 주려고 힘썼던 것처럼.


"에잇, 성격 다르면 어때. 어차피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도 어디선가 다른 부분을 발견해버리고 말 텐데 뭘. 중요한 건 서로의 노력으로 유지되는 사랑이지..."라고 외치고 싶지만 쑥스러우니 여기서 이만 글을 줄인다.



<번외편> 30대 INFJ와 ESTP 커플, 일본 도쿄에 가다

1.도쿄 비행깃값 120만 원의 정체 - 대한항공

2.호텔 이중 결제의 정체 - 발리안 리조트

3.4일, 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 도쿄 나리타 익스프레스

4.목표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 - 비 오는 신주쿠역

5.그의 추억과 술 취한 일본인 - 이케부쿠로 토리키조쿠

6.드러난 INFJ의 이중인격 - 도쿄 디즈니 씨(1)

7.드러난 INFJ의 이중인격 - 도쿄 디즈니 씨(2)

8.일본 슈크림 같은 남자와 도쿄에 - 이케부쿠로

9.일본 벚꽃처럼 진한 우리 - 신주쿠교엔

10.크리드 카미나 오 드 퍼퓸 - 신주쿠 루미네 백화점

11.이 남자와 사귀려면 도쿄로 가라 - 신주쿠 스시잔마이

12.깨진 휴대폰 액정과 함께 깨진 이성 - 규카츠 이로하, 블루보틀

13.우리 좀 친해졌다!


+ 지난 편이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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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번역가: https://linktr.ee/linakim_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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