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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Jul 15. 2024

내향인의 남자친구 모임 참석

INFJ의 글

곱슬머리 그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탔을 때 예쁜 산을 많이 보았어요.

<일간 이슬아> 일본어판 옮긴이의 말을 번역한 문장에서 보석 같은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남의 슬픔이 나의 슬픔처럼 느껴질 때 작가의 글쓰기는 겨우 확장된다.' 이 문장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얼마 전 꾸준히 참석하던 글쓰기 모임에서 우연히 다른 유부들을 주제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다른 이의 인생에 렌즈를 가져다 대고 글로 구현했을 때 오히려 제가 느낀 기쁨이 컸고 남의 슬픔에 공감하는 마음의 소중함을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었거든요.


이와 별개로 글쓰기 연습 삼아 요즘 이슈에 제 생각을 몇 스푼 넣은 글도 써보고 싶었습니다. 저와 같은 30대지만 타인인 가수 현아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된 후 이를 주제로 쓰려고 했어요. 다른 이에게 생각의 렌즈를 가져다 댄 글을 쓰려고 했죠. 그러나 지난주 곱슬머리의 그(남자친구)가 중학교 시절부터 친했다는 열 명의 친구와 그들의 아내, 아이들, 반려견들이 참석하는 어림잡아 서른 명 정도의 모임에 처음 다녀온 후 제게 떠오른 감상들이 휘발되기 전에 글로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일단 저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글에 미주알고주알 써놓으면 언제나 그랬듯 글쓰기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게 될 테고, 그러면 오지랖 넓은 저의 관심이 다시 다른 이의 인생으로 향하리라 믿습니다.


제가 현재 브런치 북에 연재하고 있는 '30대 INFJ와 ESTP의 연애'를 보신 분이라면 남자친구(ESTP)와 저(INFJ)의 가치관과 생각이 꽤 다르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일단 MBTI 자체가 정반대죠. 정반대인 MBTI를 말하기만 하면 서로의 성격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알릴 수 있으니, 어디선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해 지금은 혈액형보다 더 많은 사람이 거론하는 MBTI가 저에게는 상당히 편리한 도구입니다. 이번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자신이 'I'다, 'F'라고 밝히면 그리고 다른 이가 'I'인지 'F'인지 알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러쿵저러쿵 어색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MBTI라는 윤활유 덕분에 모두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도,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도구인 MBTI이기에 오히려 여기에 함몰되지 않아야 하고 과도한 판단의 잣대로 써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은연중에 들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우리의 MBTI가 ESTP이고 INFJ라는 판단의 잣대, 즉 결과가 아니라, 곱슬머리의 그와 내가 소위 정반대의 성격에 다다르게 된 원인을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배달 가능한 음식도 거의 전무하여 요리를 주로 만들어 먹는, 아이들과 강아지까지 포함해 서른 명에 육박하는, 흡사 대학교 MT 때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에 저라는 이물질? 까지는 아니고... 내향인이 들어가서 나름대로 필사적인 힘을 발휘해 언어적,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관찰하면서 곱슬머리의 그는 어릴 적부터 이러한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몇 뼘 이상 자랐고 현재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원인도 살펴보았으니 제가 현재에 다다르게 된 원인도 잠깐 꺼내볼까요. 저는 많은 인원의 모임 자체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끔 참여하는 스무 명 남짓이 모이는 북 토크, 2주에 한 번씩 만나 글 친구들과 서로의 글을 공유하는 글쓰기 모임도 모임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정적이고, 3박 4일이나 일주일 이런 식으로 오랜 시간 함께하지 않아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 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혼자만의 시간이 훨씬 깁니다. 본인을 파고들고 아픔을 끄집어내는 일에 익숙해져 스몰 토크보다는 이야기에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요소가 버무려질 때가 많습니다. 아, 저는 프리랜서 일본어 번역가라서 일할 때도 담당자님, 가끔 함께하는 공동 작업자들과의 실낱같은 소통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혼자네요. 과연 전 이러한 환경에서 몇 뼘 정도는 성장했을까요?


모임을 다녀온 후 오늘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두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적습니다만 놀라지 마셔요. 모임에 처음 참석한 제가 어색할까 봐 모든 분이 참으로 잘해주셨는데, 대문자 'I'인 저라서 평소에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도 혼자 있는 시간이 없으면 고장이 나버리거든요. 오랜만에 많은 사람을 보고 놀라버린 가슴을 아직도 가라앉히지 못해서 스마트폰을 끄고, 저녁에 따뜻한 엄마 밥상을 먹으러 가겠다고 부모님께 연락하고, 곱슬머리의 그에게 조금 피곤해서 나중에 연락하겠다,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홀로 일을 하다가 홀로 글을 쓰려고 브런치 스토리를 켰습니다. 홀로 쓴 글은 원래의 저를 되찾아 주는 특효약이자 안전 기지라는 것을 아니까요.


사실 꽤 불안합니다. 친구, 사고방식, 재미있어하는 이야기, 더 나아가 정치 성향까지 가끔 다른 곱슬머리의 그와 내가 과연 잘 될 수 있을까요? 저는 곱슬머리의 그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고 재미도 줄 수 있는 여자일까요? 곱슬머리의 그는 저에게 며칠 전 본 노을빛처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꽉 차서 흘러버릴 듯한 귀중한 사람으로 앞으로도 존재할까요? 사랑이라는 터무니없이 거대한 감정 밑에 밀려나 있던 그와 나의 안 맞는 부분들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원래 서로에게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말로 대충 넘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와 나의 다른 점을 사유하고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이때를 그저 흘려보내는 건 소중한 제 인생에도 무책임한 행동인 것 같거든요.


다행히도 은유 작가님의 책에서 보았던 '다정한 무관심'이라는 문구처럼 곱슬머리의 그는 잠시 혼자 있겠다는 저를 간섭하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정하게 이해해 줄 겁니다. 이러한 면모와 평소 행동을 통해 곱슬머리 그는 성격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제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성격이 다른데 존경한다는 마음마저 들게 해 준 사람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곱슬머리 그의 반짝임은 바래지 않습니다. 비록 제가 지금 이 순간 혼자의 시간을 잠깐 보내고 있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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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번역가: https://linktr.ee/linakim_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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