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확인 부탁드립니다.' 한마디지만.

2023년 번역

by 겨울꽃


연말, 연초에는 으레 하던 일이 있습니다. 뭔가 짜라란~하면서 말해야 할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1년은 마무리하는 내용이니 '짜라란~'이라는 효과음을 넣고 싶었나 봅니다.




silhouette-g4eaf725af_1280.png 짜라란~

연말에는 (짜라란~) 카페에 앉아 1년 동안 어떠한 일을 하고 어느 정도의 수입을 올렸는지 확인하며 칭찬과 반성을 합니다. 그리고 (짜라란~) 만다라트 계획표 같은 수많은 계획표 작성 방법 중 하나를 골라 2023년 계획을 세웁니다. 그 후 (짜라란~) 2022년에도 프리랜서로 여차저차 살아남은 저를 칭찬합니다. 일 외에 2022년의 다른 경험도 되새겨봅니다. 사실 저는 계획을 짜야 머리가 굴러가는 사람이라서 이런 과정을 거치는데, 다른 번역가분들은 어떠신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2023년의 연말, 연초에는 이러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명료합니다. 너무나 바빴습니다. SNS에서 연말에 바쁘신 번역가분들이 많았던 것은 얼핏 보았습니다. 저는 12월부터 1월 중순까지 대량의 게임 번역을 했기에 연말과 연초 모두 이 게임 번역과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연말에는 소중한 사람과 식사 한 끼를 하고 새해에는 떡국을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연말에 카페에서도(혼자 있을 때 작업), 새해에 집에서 떡국을 먹으러 갔을 때도, 새벽에 일어나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면서 업무 시간뿐만 아니라 틈이라는 틈은 깡그리 모아 번역에 투자했습니다. 이러한 제 모습을 본 남자친구는 저처럼은 못 살겠다고 하더라고요(? 난 너처럼은 못 살겠는데... 푸하핫, 넝담!) 납품 기한이 아슬아슬한 것도 있었지만, 원래 납품 기한보다는 빨리 마무리하려고 계획을 짜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찌어찌 번역을 마무리하고 메일로 보고할 때였습니다. 내용은 명료합니다. 인사말을 쓰고 번역 전달 사항을 담담하게 써 내려갔습니다. 마지막에는 언제나처럼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로 끝을 맺었습니다. 메일로 쓰니 저의 약 한 달이 이렇게나 간단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힘들긴 했나 봐요. 이 간소한 메일 속에서 저는 제가 흘린 피땀눈물(정확하게는 눈물은 아닙니다.)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명료하게 정리해서 짧게 메일을 보내지만 저 절대 대충 하지 않았어여. 연말, 연초 단 한순간도 제대로 마음 놓고 쉬지 못하고 미췬 듯이 일했어여. 대충 번역하기 싫어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서 봤어여. 그러니까 저 진짜 열심히 한 거 알아주셔야 해여, 담당자님...! 그리고 2023년에도 저한테 꼭 일 맡겨 주셔야 해여, 담당자님...!!!'


이런 마음속 외침을 뒤로하고 간단명료한 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새해 근황 포스팅, 끝!


*마지막의 '~여'체가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약간 울부짖는 느낌으로 쓰다 보니 저런 말투가 나왔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