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한참 회의 준비로 정신없는 월요일 아침에 어디선가 핸드폰이 숨 넘어가듯 울렸다. 한 손으로 여전히 마우스를 쉬지 않고 클릭하며 다른 한 손으로 서류 더미 속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아 매너 모드로 급히 바꿨다. 눈치 없는 전화의 주인공은 엄마였다. 목소리를 잃은 핸드폰은 이제 온몸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지만 나는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 몇 번이고 못 본 척을 했다. 프린터가 토해내는 자료들을 빠짐없이 주워 담아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때, 책상 구석에 던져진 핸드폰이 내 쪽으로 조금씩 다 가오 듯 미적미적 움직이며 애원하듯 부르르 또 떨었다.
나는‘집안에 무슨 큰일이 난 건 아닐까’하는 불안한 마음에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엄마는 다짜고짜‘별일 없냐?’고 물으며, 어젯밤 꿈속에 내가 나왔는데 무언가 몹시 힘든 일이 있는지 어깨가 축 처져서 방구석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아무 일 없다고 괜히 이상한 꿈을 꿔서 바쁜 월요일 아침부터 오지랖이냐고 짜증이 섞인 말들을 다급하게 쏟아내고, 엄마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싹퉁머리 없이 전화를 뚝 하고 끓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피곤함과 무기력으로 약도 없는 월요병에 걸린 나는 오늘따라 줄줄이 이어지는 회의와 더불어 시들시들 지쳐가고 있었다. 회의 때마다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비슷한 말들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오고 갔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자꾸 불어나는 숙제의 대부분을 책임지게 된 나는 좀비처럼 어슬렁어슬렁 자리로 돌아와 멍청히 천장을 봤다. 그 순간 뱃속에서‘꼬르륵’하고 가냘프지만 또렷한 신음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점심도 건너뛰고 텅 빈속에 시꺼먼 커피만 마셔 댔다. 까칠하게 마른입 속으로 다시 식어빠진 커피 한 모금을 꿀꺽하고 삼키자 찌릿하게 속이 쓰려 왔다. 나는 지친 팀원들을 하나 둘 추슬러 세우고 회사 근처 식당에서 조금 이른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오늘의 메뉴’인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팀의 막내가 부지런히 수저를 돌리고 누군가는 물 잔에 물을 따랐다. 큰 냄비에 가득 담긴 김치찌개는, 순식간에 우리의 애끓는 속처럼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나는 팀원들에게 김치찌개 한 국자 씩을 먼저 퍼주고, 한 국자를 내 앞으로 가져와 숟가락을 들면서 그제야 엄마가 생각났다. 그까짓 일이 뭐라고,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잘 못 걸려온 전화 마냥 매정하게 끓어 버리는 딸 때문에 엄마는 하루 종일 얼마나 서운했을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미안했다’는 문자라도 보낼까? 그러고 보니 꿈에서 딸 걱정인 엄마와 도란도란 저녁을 먹은 지도 참 오래였다.
나는 무거운 마음을 누르며 밥 한 숟가락을 김치찌개 국물에 꾹꾹 말다가 한참 끓고 있는 김치찌개를 가만히 봤다. 그리고 상상 속이지만 엄마를 몰래 초대했다. 엄마는 어서 먹으라며 환하게 웃었고, 나는 오늘따라 더 살가운 엄마의 미소와 눈을 마주치며 김치찌개를 먹었다. 상상 속이었지만 엄마와 함께 한 김치찌개 –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