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망설임 없이 거절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리랜서 주제에 일을 거절한다는 것은 다음을 약속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거절을 한다. 거절의 이유는 두 가지다. 해도 안 될 것 같은 일과 하기 싫은 일. 즉 억지로 안 되는 일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 정도 버티고 나면 직감적으로 ‘웬만하면 안 하는 편이 좋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감’이라는 녀석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그럴 때면, 이제는 웬만해서 잘 뜨거워지지도 않은 열정과 의욕이 순간 차갑게 얼어붙는다. 노력에도 밀고 당김이 필요하고 노력만으로 빛나던 시대가 지났다는 걸 알게 된 탓이기도 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래전에 끊어졌던 인연을 어쩌다 다시 만났다고 해서 반가움에 호들갑을 떨지 않으며, 뜻밖의 일로 멀어져 가는 인연이 아쉬워 애써 붙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스쳐 지나가고 어차피 떠나갈 인연이라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둔다.
늘 고대하던 기회라는 녀석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회가 주어졌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덥석 잡지 않는다. 이것이 기회인지 위기인지, 나를 중심에 놓고 앞뒤 상황을 찬찬히 따지게 된다. 이런 나를 보며 누군가가 나이 먹더니 변했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보다 얼굴 표정도 소심해지고 두둑했던 배짱도 사라졌다나. 또 누군가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데, 그렇게 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겠냐며 걱정의 쓴소리도 했다.
물론이다. 나는 예전보다 소심하고 조심스러워졌고, 내 젊은 날의 해시태그였던 배짱과 확신은 분명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깨달은 게 있다. 삶은 억지로 확신을 불어넣고 완벽해지려고 애쓸수록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한낱 인간인 우리 모두는 약점과 실수투성이이고,‘나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는 자연의 섭리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진작 그랬다면, 사는 게 조금은 만만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내 탓도 아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애쓰기보다 오히려 반드시 내 힘으로 해결되는 문제를 찾는다. 그리고 꼭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내가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숙한 자신감과 느슨한 여유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내 삶에 초대된 이 일상들을 더 이상 억지로 해도 안 될 때문에 놓치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안 하는 것도 존중받아야 할 내 선택이다. 나를 위해서 하라고 하지만 그게 정말 나를 위해서일까? 너를 위해서는 아니고?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