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

by anego emi

두 번째 새해가 코앞입니다.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이미 새해가 밝았지만

기대보다 시시했던 누군가에는

또 한 번의 찬스입니다

결심이라던가, 용기라던가, 다짐이라던가,

새해라는 이름을 빌려서

스스로에게 큰소리로 떠벌릴수록

괜스레 어깨가 으슥해지는

기간 한정판 같은 찬스.


저는 손을 높이 들고 그 찬스를

씩씩하게 쓸 겁니다.

눈치채셨군요?

시작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린

새해의 한 달은 미지근했습니다.

묵은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아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몸 같았죠.


브런치 같은 산책길에

오늘은 공원 대신 동네를 한 바퀴 돌기로 했죠.

상가들이 즐비한 큰 골목을 가로질러서

한참을 걸어가면

우연히 발견되는 샛길 같은

좁다란 재래시장 골목이 있답니다.

그 골목의 초입에는

언제나, 맛있는 밥상을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시즌별 이벤트를

단박에 눈치채게 하는 채소나

과일들이 자판에 수북이 쌓여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 같은

그것들을 다듬고 보살피는

할머니들이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발견되죠.


그런데 오늘은 초입부터

고소한 기름 냄새가 훅 하고

코를 자극하지 뭐예요?

골목 사람들 모두 잔치라도 벌이는 듯

가게문을 활짝 열어놓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볶고

생선을 굽고, 꾸덕꾸덕 마른 가래떡을 썰고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생생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죠.

'아하. 명절 전야는 이런 거구나

우리식 새해 전야의 풍경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즐거움으로 생기가 넘치는 거였지'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치 없이 여기저기 두리번 되며

침을 꿀꺽하고 크게 삼키고 말았답니다.


설날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다 모이지 못하는 섭섭함도

어려워진 형편에 대한 걱정도 있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렇게 계속되는구나'하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들었죠.

그 익숙한 음식 냄새가

얼마나 마음을 몽글몽글

따듯하게 만들던지요.


연분홍 코트를 곱게 입은 할머니가

전이 수북이 담긴 좌판 앞에 서서

반찬 가게 아주머니에게

맛보게 해 달라고 때를 쓰십니다.

잠깐 멈칫하던 아주머니는

인심 좋게 커다란 동태전 하나를

집어서 할머니에게 건네시네요.

할머니는 두 눈을 감고

오물오물 음미하듯이

맛나게 전을 드셨죠.

그러고 나서는 할머니는

통 크게 전 한 접시와

방금 뽑아놓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 두줄을 사셨답니다.

그 옆에 서서 자신을 힐끔 거리는

저를 발견한 할머니는

가래떡을 뚝하고 반으로 잘라서

저에게 권하지 뭐예요?

" 묵어봐.. 맛있어~"

저는 뭉클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할머니와 나란히 서서 가래떡을 먹었답니다.


그 순간, 문득 비틀스의 노래가 떠오르네요.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멋진 거야.

그렇게 인생은 멋지게 흐르지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싶어?

그럼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외쳐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남은 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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