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모 잡지에서 각 세대별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10가지씩 나열한 칼럼이 있었는데요
그때 50대가 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마지막 항목은 바로,
'산으로 가지 말 것'이었답니다.
그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저는
'그래, 산은 좀 그렇다.
딱히 갈 곳도 할 일도 없어서
산으로 향하는 것은
자학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말이죠.. 50대가 된
제가 최근에 산으로 가고 있답니다.
5월 화창한 어느 주말이었죠.
오랜만에 푹 꿀잠을 자고
눈을 반짝 떴는데 하늘이 너무
눈부신 거예요. 그래서
살포시 창문을 열었더니
봄바람이 훅~ 하고 불면서
창밖의 편백 나무가 사정없이
흔들리더니, 그 속에 숨어있던
새들이 후다닥~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죠. 그때 저와 눈이
딱 마두 친 새 한 마리가
저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 언니, 날 따라와요, 산으로 와요'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저는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고 후드티를 꺼내 입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죠
제가 사는 곳은 아차산과
매우 가까운데요
길을 건너고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시장 골목을 쭉 따라 올라가면
가성비 갑으로 등산객들을
일 년 내내 불러 모으는 아차산으로
향하는 계단길이 열리죠.
날이 날인지라 때깔 좋은 등산복을
풀 장착한 어르신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조심조심
산으로 갔답니다. 적당히 가파른 돌산은
저의 소심한 승부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뒷짐을 지며 여유롭게
걸어가는 어르신들의 핸드폰에서
울러 퍼지는 트로트를 흥얼거리면서
설렁설렁 해맞이 고개를
무사히 지나고 정상으로 향했답니다.
파노라마 뷰로 펼처지는 한강과
다리 위를 느릿느릿 달리는
차들을 빤히 내려다 보며
올해 처음으로 크게 숨을 내쉬었죠.
가슴이 확 트이면서 적당한 노곤함은
기분 좋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며
저를 배시시 웃게 했답니다.
산 정상의 구석구석에 침투해서
막걸리는 마시는 볼 빨간 어르신들도
나름 귀여워 보였고, 그들이
토해내는 걸걸한 이야기들도
재밌나지 뭐예요. 그렇게 저는 산과
풍덩 사랑에 빠졌답니다.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옷을 챙겨 입고, 차가운 냉커피를
담은 물통을 챙기고 산으로
향합니다. 산이 불어넣어주는
생기와 위로를 단박에 알아버렸거든요
햇살과 바람의 흔들림에 따라
다른 색깔과 분위기를 뿜어내며
저에게 손짓을 하는 나뭇잎들의 속삭임에
마음이 자꾸 콩닥되는 걸요.
그래요, 산은 말이죠
몸이 근질근질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근질근질해서 가는 곳 이랍니다.
즉, 마음이 산으로 가고 있는 거죠.
기분 좋은 산과의 조우를 끝내고
툭툭 발소리를 내며 내려오는데
저를 잘 파악하는 애플이
골라준 음악에 마음이 꿀렁합니다.
잠깐 가사를 소개할까요?
'사랑이 쉬웠던 시절
약속도 쉽던 나날들
가슴속에 몇 번이고 맹세했던
널 지키겠다는 고백은 그 어디에...
언제나 혼자 꿈을 꾸네
여전히 난 스무 살 ~'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