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요즘 저는
일찍 자도 늦게 자도
피곤해도 멀쩡해도
새벽에 눈을 뜹니다.
길고 지루했던 여름의 새벽은
창밖의 새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아침을 기다리곤 했는데
초저녁과 같은 푸른 기를 머금은
가을의 새벽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부추깁니다.
초점 어린 흐릿한 눈을 비비며
소설책을 읽고 싶어 지거나
추억 속에 꼬깃꼬깃 접어놓았던
연애편지를 다시 꺼내보듯
낡은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싶다거나
맥락 없이 고른 음악을
찬찬히 숨을 고르며 듣고 싶어 집니다.
그렇게 새벽에 눈을 뜨고
새벽에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별생각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새벽이 주는
평화로움과 차분함에
눈을 뜨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 앞에
담담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새벽에 눈을 뜨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보잘것없지만 소중한 저의 하루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함으로써
아침의 시간에 맘껏 게으름을 부리고
소박한 브런치를 먹으며
오늘의 할 일을 계획합니다.
딱히, 하고 싶거나 할 일이 없으면
쓰고 싶은 글이나 그리고 싶은 그림의
소재를 찾기 위해 이른 산책을 나갑니다.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누군가는 이불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시간 -
낙엽이 지천에 깔린 골목길을 걸으며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에
누군가 내 뒤를 따라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요.
이런 가을날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들의 청아한 소리가
그 어떤 음악보다 심금을 울립니다.
사각사각, 후드득, 바스락바스락 ~
이 소리들이 반복되면 어김없이
우수수 우수수 ~ 낙엽비가 내리지요.
빤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숨을 한번 내 쉬어봅니다.
또한 번의 가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말이죠.
행복이란 내 안의 기쁨을 찾는
일이라고 하지요. 솔직히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우는 아이에게 눈물을 그치라고
쥐어주는 사탕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답니다.
그러나, 최근에 저는 제가 기쁨이라는
감정을 행복과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기쁨은 특별한 조건이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내 안의 감정인 반면에,
행복은 반드시 외적인 조건이 있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 느끼는
순간적인 만족과 즐거움에 가깝다는 것을요.
조건 없이 나에게 찾아와 주는
다양한 기쁨들을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답니다.
새벽에 눈을 뜬 제 하루가
어느 순간 다르게 느껴진 것처럼 말이죠.
그러고 보니 기쁨의 순간은
날마다 곁에서 저를 피식피식 웃게 한
제 일상의 퍼즐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맛있게 내려진 커피 한잔에
기뻐하는 저의 아침과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새책 냄새에 들뜨는 저의 오후-
퇴근길에 집 앞으로 불쑥
찾아와 준 친구와 함께하는
저의 밤은 기쁨이었죠.
작지만 특별한 보통의 기쁨으로
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어쩌면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늘도 새벽에 눈을 뜨면서 다짐합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성취도 없이
누구도 곁에 있지 않지만
기쁨은 나에게 찾아오고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