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도 반토막이 났습니다.
한 해가 슬슬 뒷걸음을 치듯
사라지고 있군요. 뜬금없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또 열두 달을 함께 했지만
딱히 해놓은 일도
주머니에 넣고 틈틈이 꺼내보며
키득키득 웃을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맘 때가 되면 불쑥불쑥
공허한 마음이 저를 찾아온답니다.
밥을 먹다가도
산책을 하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저를 찾아와서 저를 멈춰 세우고
깊은 한숨을 내쉬게 하지요.
이런 몹쓸 마음을 떨쳐버릴 요량으로
새해를 점처보지요.
'그래.. 새해는 말이야 다를지도 몰라'
하고 혼잣말을 내뱉으면서요.
헛헛한 마음에 무심코 펼쳐 든
운에 관한 책에서는
운의 흐름을 행운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은
귀인을 만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귀인. 귀한 인연... 도대체
어디를 가야 만날 수 있을까요?
저와 같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 프리랜서이자 작가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무작정 뛰어들어가
뭐라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이런 씁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문뜩, 귀인을 만나는
저만의 방법이 떠올랐답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이 아니라
책 속에서 만나는 것이죠.
유명인사들의 인터뷰나 자서전에서
종종 자신의 운명을 바꾼
한 권의 책이 등장하곤 하지요.
말하자면, 그 책을 쓴 저자가
혹은, 그 책 속의 주인공이
그들에게는 행운을 열어준
소중한 귀인인 셈이지요
그래서, 저는 매달 책 속에서
저만의 귀인을 정하기로 했답니다.
12월에 제가 만난 귀인은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입니다.
저는 조르바에게 묻습니다.
'자꾸 무기력해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
조르바는 저에게 답합니다
쓸데없이 생각이
너무 많아서라고.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저는 또 묻습니다.
조르바는 목소리를 한 톤 높여
씩씩하게 말합니다.
" 뭘 어떻게 해?
지금 하고 있는 건만 생각해
밥 먹을 땐 밥 생각
산책을 할 땐 산책 생각
친구랑 이야기할 땐 친구 생각....
오지 않은 내일과
뜬구름 같은 기대 따위는
다 무시해버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걸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라고.
그러다 보면, 무기력할 틈이 어딨어?"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