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우~" 전화기 속으로 들려오는 깊은 한숨... 참다가 참다가 내뱉는 그 숨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엄마다. 아마도, 아버지가 또 소란을 피운 탓이리라. 오랜 지병과 함께 어린아이로 퇴행한 아버지는, 식탐과 고집이 급속도로 늘어간다. 금세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고는, 간식거리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쓰고, 조금 있다 드시라는 엄마의 만류에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이성을 잃고 온 집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기경에 이르게 된다. 엄마는 행여 이웃들에게 패가 될까, 아버지를 어르고 달래다가 지치면, 이렇게 나에게 전화를 해서, 아무런 말 없이 한숨을 내쉬곤 했다. 아버지 때문에 그러냐 는 내 질문에, 엄마는 몇 초의 간격을 두고 숨을 고르듯 아까보다 약하게 휴우~ 하고 숨을 내뱉는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니다. 아버지야 늘 그렇지... 부디 오늘 하루도 재미나게 즐겁게 보내거라. " 그리고 뚝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자신 몫까지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아주기를, 나에게 당부하는지도 몰랐다. 중매로 아버지를 만난 엄마는, 첫눈에 아버지에 끌렸다고 했다. 낡은 구식 양복을 입고 나온 아버지가 그렇게 반듯하고 선 해 보였다고 했다. 엄마는 더 나은 혼처를 마다하고 큰 이모에게 돈을 융통해, 가난한 아빠를 대신해서 신혼 셋방을 얻었다. 그렇게 운명의 신은 두 분의 새끼손가락에 빨간 실을 매어준 것이다. 서글프게도 행복했던 순간은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지고,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려는 듯,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서로의 손가락에 맨 실은 팽팽해진다. 이 실이 끊어지는 날이 오기 전까지, 이 팽팽함은 일방적으로 엄마의 손가락을 죄어올 것이다. 아빠의 남은 생이, 엄마의 남은 생의 고뇌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부부의 인연이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