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고야, 사람이 그렇게 서 있을 수 있어? " 크로키 북 위에 내가 어설프게 그려놓은 모델의 가슴 한가운데를, 가늘고 긴 막대로 가볍게 툭 치며, 선생님은 혼을 내곤 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두려움을 느끼며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관문은, 바로 인체 크로키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모델이 취한 포즈를 재빨리 스케치해 내야 한다.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종이 한가운데 긴 세로줄을 긋고, 머리와 몸통, 팔과 다리를 어기 설기 그리면, 벌써 모델은 다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매번 수업 시간 동안 그렸던 것 중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되는 한 장을 골라, 선생님에게 제출을 하며 코멘트를 들어야 했는데, 언제나 나는 혼이 나는 쪽이었다. 적당한 웨이브가 있는 은발머리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선생님은, 내 스케치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을 하고,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 늦게 시작했으니, 젊은 애들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그려야 해. 정신을 빠짝 차리고... " 마흔 살에 도쿄로 와 그림을 그리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유난히 혹독했다. 그러나, 돌아가면서 당번제로 하는 청소 날이면, 선생님은 맨 마지막에 교실을 나서는 나에게, 선배들이 남기고 간 크로키 북의 낱장을 모아 건네며 말했다. " 종이 아끼지 말고 많이 그려 봐. 내가 틈틈이 챙겨줄 테니까 "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은 변함없이 수업 시간에 나에게 모진 말로 혼을 냈고(딱 두 번 칭찬에 가까운 말을 했다), 내 사물함에 두둑하게 손수 한 장 한 장 찢은 여분의 종이들을 몰래 넣어두셨다. 아직도 여전히 나에게 사람을 그리는 것은 어렵다. 새 학기에 들뜬 아이들의 모습을 창문으로 흐뭇하게 내려다보다, 오랜만에 도쿄에서 쓰던 연필들을 꺼내본다. 선생님은 잘 계실까? 덕분에 이제 이만큼 이지만 사람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언젠가 꼭 한번 뵙고 싶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