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목)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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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 삼아하는 거야 ~" 밀고 가던 손수레에서 떨어진 라면박스 조각을 주워 건네는 내게, 할머니는 멋쩍은 듯 말했다. 나는 잔잔한 미소로 화답하고 돌아섰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힐끔 뒤돌아 본다. 활처럼 휜 할머니의 등이 괜스레 안쓰러워 보인다. 잔잔한 한 편의 에세이 같았던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여주인공의 아버지는 날마다 박스를 주우러 다닌다. 어느 날, 한껏 멋을 내고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사돈 여인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만다. 당황스러움과 창피함이 교차하는 순간, 각자의 자식을 나눠가진 그들은, 차마 서로를 외면하지 못하고, 길가에 나란히 앉아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사돈 여인이 물었다. " 왜 박스를 주우세요? 형편이 어려워요? " 여주인공의 아버지는 답한다. " 아니요. 제가 사는 집이 우리 딸이 월세를 받던 집인데, 글쎄 그 월세가 60만 원 이더라고요. 그래서 하루에 2만 원이라도 벌어보자 하는 마음에 시작했는데... 그게 참 어려워요. " 두 어르신들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한 채,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최근 들어 부척 박스 줍는 노인분들이 주변에 자주 보인다. 아까 그 할머니의 말처럼 운동 삼아 서든, 드라마에서처럼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든 박스를 줍는 그 뒷모습은 노후의 쓸쓸함과 무기력함에,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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