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가라' 바람 빠진 공 모양 흐물흐물해진 천 소파를 드디어 버렸다. 친구의 집에서 동그란 스티로폼 알갱이가 잔뜩 들어간 앉은뱅이 천 소파에 처음 앉은 나는, 그 몰캉몰캉 부드러운 촉감에 반해 냉큼 하나를 사서 내 방에 들여놓았다. 그러나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에서 보내는 나는, 생각과 달리 그 소파에 앉을 일이 별로 없었다. 침대 옆 혹은 앞에 방치되어 있기를 몇 년, 어느새 스티로폼 알갱이들은 생기를 잃기 시작했고, 소파의 네모난 등받이는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그 형태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새집으로 이사를 온 후, 나는 스티로폼 알갱이 두 봉지를 구입해서 소파의 뒤 지퍼를 열고, 빵빵하게 알갱이를 채웠다. 그리고 또 몇 년. 여전히 방치되는 날이 많았던 소파는 또다시 녹아내리고 있었고, 놀러 온 지인이 풀썩하고 엉덩이를 내리찍는 순간, 제법 깊고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었다. " 소파가 왜 이 모양이냐? " 하고 머쓱한 웃음을 짓는 지인에게, 주저 않은 소파 위에 놓을 도톰한 방석을 내밀었다. 그래도 나는 이 소파를 버리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먼지를 털고, 스티로폼 알갱이를 골고루 분배해서 각을 잡고 형태를 만들어 벽에 기대듯 밀어놓았다. 어젯밤, 친구들과 오랜만에 단골 조개 구이 집에서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서 돌아온 나는, 깜깜한 방에 불을 켜려다 물컹한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책상을 거칠게 민 덕에, 책상 위에 놓인 향초 병이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액체를 카펫 위에 토해냈다. 순간, 잔뜩 화가 난 나는, 나를 넘어뜨린 물컹한 녀석을 향해 발길질을 해되며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 그 녀석을 양손으로 번쩍 들어 올려, 빌라 앞 쓰레기 수거장에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아침을 눈을 뜨고, 양 무릎에 퍼렇게 든 멍을 문지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그건 나의 짐으로 혹은 나의 상처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란 인간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게 참으로 많구나. 욕심도, 자존심도, 질투도, 분노도, 원망도... 그래, 이제부터라도 아낌없이 다 버리도록 애를 써 보자.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