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토)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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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익 치익 치익~ " 도착을 알리는 열차의 경적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압력밥솥의 냄비 뚜껑이 요동을 친다. 동네로 놀러 온 지인과 가볍게 산행을 하고, 산 밑에 자리를 잡은 보리밥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왔다. 하얀 김을 거칠게 토해내는 압력밥솥을 물끄러미 보다가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그 시절엔 밥은 압력밥솥에 하고, 전기밥솥은 그야말로 밥을 보관하는 밥통에 불과했다. 엄마는 초저녁이 되면, 무거운 스테인리스 압력밥솥에 쌀과 잡곡, 콩을 골고루 섞어 넣고 밥을 했다. 동생과 나는 TV에서 하는 만화영화에 넋이 나가 있었는데, '치익 치익' 압력밥솥이 굉음을 내기 시작하면, 엄마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소리쳤다. "누구든, 압력솥에 뜸 좀 들여 ~" 동생과 나, 둘 중에 하나는 한참 재밌어지는 만화영화를 잠시 중단하고, 부엌으로 달려가 가스불을 낮춰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오른쪽 발로 동생의 궁둥이를 가볍게 툭툭 차며 고개를 부엌 쪽으로 까닥였다. 그러나 동생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TV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압력 밥솥은 더욱 요란한 기함을 토해내고, 엄마는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 뜸 좀 들여~ 밥 타기 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얄미운 동생의 뒤통수를 가볍게 툭 치고, 나는 부엌으로 뛰어가곤 했다. 이제, 우리 집 부엌엔 밥이 다 되었다고 울부짖던 압력밥솥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으며, " 맛있는 밥이 다 되었습니다 "라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는 전기밥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가끔은 그 시절 나를 귀찮게 했던 압력밥솥이 궁금해진다. 덕분에 먹었던 그 찰기 넘치던 밥맛도...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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