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금)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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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가 시작되었다 ' 밤새 추적추적 비가 오다가, 아침에야 잔뜩 구름을 머금고 잠시 소강상태다. 희뿌연 구름 사이로 흐릿한 하늘색 얼룩이 피어오른다. 잠깐이라도 해가 나려나? 서둘러 눅눅해진 옷가지들 몇 개와 수건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모기 때문에 꽁꽁 닫아놓았던 창문을 반쯤 열자,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습기 찬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우리나라 장마는 일본의 장마에 비하면 양반이다. 내가 도쿄에 처음 갔을 때 8월 초였는데, 도착한 그다음 날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굵은 장대비가 하루 종일 쏟아졌다. 이렇게 비가 오면 좀 선선해지기라도 해야 하는데, 한여름의 불볕더위는 여전했다. 한마디로, 온 세상이 습한 사우나 통 같았다. 삼일 내내 집안에만 갇혀있다가 잠깐 비가 멈춘 틈을 타고,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냉장고에 먹을 것도 없을뿐더러, 얼음 같은 차가운 맥주 한 캔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에어컨이 펑펑 나오는 마트를 종횡무진 누비며, 먹거리와 안줏거리, 캔맥주를 사고 마트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다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우산도 없이 나온 것도 문제지만, 우산이 있다고 한들 이런 비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였다. 나는 마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맥주캔을 탔다. 후덥지근한 습기 찬 공기를 안주 삼아, 크게 한 모금 넘겼다. 내가 지금까지 마신 맥주 중에 최고의 맛을 꼽으라면, 바로 이때 마신 맥주일 것이다. 일본 맥주가 맛있는 이유는, 이런 후덥지근한 날씨 탓일지도 모른다. 비 오는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맥주를 홀짝이다 무심코 옆을 돌아봤다. 그 순간, 나와 비슷한 자세로 맥주를 마시던 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머쓱해하는 나에게, 그는 씩 하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맥주캔을 들며 " 간빠이 ~" (치어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와 나는 나란히 앉아서 맥주 2캔을 비웠지만, 여전히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갑자기 그때의 맥주 맛이 그리워진다. 한 캔 마실까? 오전부터 곤란한데.... 뭐,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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