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목)

by anego emi

' 프리랜서의 여름휴가법 ' 무슨 이유인지 오늘따라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멍덩하고, 맥락 없는 생각들이 그곳에서 갈 곳을 잃고 정처 없이 부유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도 내가 글을 쓰는 것 같지 않고,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것 같지 않으니, 이런 당황스럽고 짜증 나는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속이 좀 후련해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더위를 먹은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이참에 프리랜서의 여름휴가를 시작할 수밖에... 섬뜩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추리소설을 몇 권 골라 읽으며 차가운 샤르도네를 홀짝일까 하다가, 작가라는 명분으로 날마다 펼치는 것이 책이니 휴가만큼은 책과 거기를 두자 고 마음을 먹는다. 그렇다면 뭘 할까? 이 더운 날 보양식이라도 챙겨 먹으라는 카톡을 보낸 후배에게 묻는다. "오늘부터 나, 여름휴가인데 뭘 할까? 어디 가긴 좀 그렇고. " 그러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을 한다. " 언니,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재난 영화 몇 편 몰아보세요. 그거 은근슬쩍 스트레스 해소돼요. " 그녀의 충고대로 이번 휴가의 첫날은 하늘, 땅, 물의 천재지변을 스케일과 기술력으로 완벽히 재연한 영화들을 세편 골라보기로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근처 마트로 향한다. 조미가 된 오징어 한 봉지와 치즈볼 한 통, 맥주를 사고 집으로 돌아와, 커다란 물방을 무늬가 있는 하늘하늘한 여름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얼음을 채운 와인 쿨러에 맥주캔을 넣어두고, 후배에게 빌려온 캠핑의자와 테이블을 방 한가운데 펼치고, 티브를 켠다. 그리고 티브의 볼륨을 높이며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딴다. 이렇게 나만의 캠핑장이자 영화관에서 프리랜서의 여름휴가는 시작된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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