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화)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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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미안한 관계' -스무 살에 집을 떠나 독립을 선언했던 내가, 엄마와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마흔을 코앞에 두고 떠난 도쿄 유학 때문이다. 나에게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던 탓에, 버젓이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작스럽게 때려치운 것도, 남의 집 딸처럼 가정을 꾸리지 못한 것도 죄송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괜한 자격지심의 발동에 불과했으나 그때는 그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뜻밖에 엄마는 나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딱히 뭐라고 응원의 말도 염려의 말도 덧붙이지 않았으며 ' 네 인생이니 알아서 해라' 하고 짧고 단호한 말로 나를 떠나보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헤어지는 순간에 잠깐 반짝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진심이 서린 쉽게 희석되지 않는 미안한 마음 - 돌아서는 내 어깨가 나도 모르게 조금씩 흔들렸다. 그 덕분에 집에서 유독 말이 없고 무뚝뚝했던 내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주절 되면서 핸드폰이 뜨거워지도록 통화를 하고, 학교에서 칭찬을 들으면 아이처럼 들떠서 엄마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살짝 미안한 마음이, 우리가 아무리 명절 때만 잠깐 얼굴을 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의 품 안에 자식이라는 것을, 엄마를 향한 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아마도, 가장 좋은 관계는 이렇게 살짝 미안한 마음을 품게 되는 관계가 아닐까. 미안하니까 만날 때마다 조금이라도 잘해주고 싶고, 미안하니까 가끔 서운해도 참아주고, 미안하니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찔끔 나는 그런 관계 - 나를 한없이 무장해제시키는 그 사람을 향한 햇살 같은 마음의 비밀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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