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길지도 않았던 미국 유학시절, 이맘때면 가장 그리워지는 것이 바로 멸치 향이 구수한 어묵 국물이다. 그때마다 뜨끈한 국물을 향한 그리움의 허기를 채워준 것이 바로, 수프다. 학교 도서관 앞에는 늘 중국식 볶음밥과 면류, 한 입 크기의 얇은 만두가 들어간 수프와 시큼하면서도 매콤한 감칠맛이 나는 핫 앤 사워 수프를 팔았다. 원래 미국에서 중국음식은 매우 저렴한 축에 들었는데, 학교 앞의 푸드트럭이니 그 가격은 오죽 착했을까? 단돈 1달러이면 육개장 사발면 크기의 플라스틱 그릇에 넘치도록 담아준다. 투명한 갈색빛의 진득한 국물에 손가락 한마디의 길이로 가늘게 채 썬 두부와 죽순, 마른 버섯이 전부이지만, 한 그릇 정신없이 뚝딱 비우고 나면 온몸이 금세 따뜻해졌다. 기숙사에서 같은 스위트룸을 쓰던 인도 친구도 수프를 좋아해서, 종종 중국식 달걀 수프를 먹으러 유명한 식당을 가기도 했지만, 역시 학교 앞 푸드트럭의 핫 앤 사워 수프 맛을 따라올 수 없었다. 그 후, 나의 수프 사랑은 야채 수프로 옮겨갔는데 사골국 냄비 같은 커다란 통에, 토마토와 당근, 양파 등의 각종 야채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 낸 이 마법의 수프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 않았다. 나는 이 수프에 덤으로 주는 크래커 대신에, 흰밥을 말아서 먹었다. 밥알에 수프의 맛이 적당히 배어들면 물기가 많은 죽 같기도 해서, 수프만으로 무언가 부족했던 허기를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나는 요즘도 바야흐로 수프의 계절, 늦가을이 되면 야채수프를 한 냄비 끓여놓고 국 대신 밥과 먹곤 한다. 만드는 법도 너무너무 간단해서 절대 실패가 없다. 헛헛한 마음에 찬바람이 분다며 크게 한숨을 쉬는 지인을 위해 나는 부지런히 아침부터 야채수프를 끓이고, 보온 통에 담아 그녀의 집으로 배달을 간다. 이 마법의 수프가 그녀에게 따뜻한 온기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