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방앗간

by anego emi

도쿄 유학시절 롯폰기에 있는 지인의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고작 하루였지만 어학원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한류 열풍 덕에 밀려드는 손님들을 맞아야 했다. 그러다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캔은 참으로 달았다. 오늘이 끝나고 내일 시작되기 20분 전... 지금도 모두의 기억 속에 회자되는 인생 드라마, 심야식당이 방영된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목요일 심야에 방영되는 이 드라마는 고되고 지쳤던 내 하루를 맛있는 음식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위로하곤 했다. 언젠가 서울로 돌아가면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저런 식당이 하나쯤 있었으면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선선한 초가을의 바람을 맞으며 지인의 손에 이끌려 조그만 일식당에 갔다. 기억자 모양의 카운터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둘러앉은 손님들은, 주인장이 알아서 만들어 주는 다양한 음식들을 나눠 먹는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슬쩍 미소를 짓기도 하고, 술잔을 가볍게 들어 올려 건배를 청하기도 한다. 좁은 식당은 어느새 손님들의 웃음과 이야기로 넘쳐나고, 각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다가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옆 손님의 사연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한다. 생일을 맞아 온 손님에게는 낮은 목소리로 축하 인사를 건네고, 기념일을 맞은 커플에게는 오래오래 행복하라고 빌어준다. 손님들이 편안하게 먹고 마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주인장은 고작 열 개도 안 되는 카운터 좌석이 다 차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 흔한 대기자 명단도 없다. 가게 앞의 야외 테이블은 절대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그냥 돌려보낼 수 없는 손님을 위해 언제나 비워놓는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처럼 늦은 퇴근길에 반드시 이곳에 들렀다 가는 참새 같은 손님이 날마다 있으니까.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 중절모를 쓴 어르신 한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주인장은 반가움과 동시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어르신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야외 테이블을 힐끔 본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가게 문을 조심조심 닫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주인장은 칼질을 하며 말한다. “ 우리 집 단골이에요. 우리 집을 참새 방앗간이라고 부르시죠 ” 한 손님이 오늘은 이상하게 기분 좋은 날이라며 스페셜 요리를 주문해 모두에게 나워준다. 그 요리에 감동한 옆자리 지인이 차가운 맥주 한 잔을 모두에게 돌리고, 주인장은 뚝딱 간단한 안주하나를 서비스로 내어준다. 어느새 허물없이 서로의 이야기에 끼어들게 된 손님들이 목소리를 높여 갈 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어르신이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인장에게 내밀며 무심하게 말했다. “ 잘 먹었어. 내일 또 봐.” 그리고 가게 안의 손님들에게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다들 맛있게 먹고 마시고 화복 한 시간 보내시오. 이 집은 맛집이야. “ 그리고는 가게문을 열고 나가셨다. 순간, 가게 안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어르신의 강렬한 인사말에 주인장도 손님들도 감동받은 것이다. 그날 밤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는 행복했다. 각자의 사연을 심심하게 털어놓으며 배를 잡고 웃어댔다. 이렇게 나에게도 드디어 심야식당이 생긴 것이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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