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한 춥파춥스

by anego emi

책상 위에 삐딱하게 놓인 알록달록한 춥파춥스 막대 캔디 … 내가 내 돈 주고 샀을 리는 만무하고 이게 어디서 났을까. 신기한 물건이라도 발견한냥 손에 쥐고 요리조리 돌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문득 어젯밤 귀갓길에 편의점에 들른 일이 번쩍 하고 생각났다. 예상외로 골치가 아팠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지인의 사무실에서 초저녁의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안주 삼아 마시기 시작한 와인이, 개와 늦대의 시간을 지나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어느새 꾸벅꾸벅 조는 나를 흔들어 깨워 누군가 택시에 태웠다. 신기하게 집으로 가는 택시만 타면 정신이 말짱해지는 나는, 한강 다리를 건너며 어느새 비의 흔적을 말끔히 걷어낸 밤하늘의 별을 새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한 뼘쯤 창문을 내리자 후덥 하지만 차가운 기운을 머금은 기분 좋은 밤바람이 훅하고 뺨에 닿는다. 동네 초입에 내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시계를 본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다. 이대로 잠을 자기도 무언가를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편의점으로 향한다. 딱 맥주 1캔만 더 마시자.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그냥 다 좋음으로 그것을 위해 치어스.! 편의점 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가서 맥주 4캔을 가슴에 안아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 앞에 꽃잎처럼 흩어져있는 알록달록한 춥파춥스들. 솜뭉치같은 뽀얀 손이 그것을 하나하나씩 꽃꽂이하듯이 구멍이 숭숭 난 동그란 지구본 모양의 사탕통에 꽂고 있었다. 그 솜뭉치의 주인공은 큰 키에 덩치가 운동부 같고 동글동글 한 앳된 얼굴의 양볼이 포동포동한 20대 청년이다. 어찌나 집중을 하고 사탕들을 꽂고 있는지 내가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어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 그러다가 망부석처럼 서있는 길쭉한 여인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꾸벅하고 고개를 숙인다.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그거 하나하나 직접 다 꽂는 거예요? “ 그러자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나는 큭 하고 코웃음을 내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듯 내뱉는다. “ 아이고… 귀여워라.” 그 청년은 오늘 밤의 마지막을 함께 할 맥주들을 얌전히 봉지에 담아 나에게 내밀며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도 말한다. “ 참… 이거 하나 드릴까요. 요거 모퉁이가 깨어져서 팔지도 못하는 거지만…” 그리고 춥파춥스 하나를 솜뭉치 같은 손에 꼭 쥐고 나에게 내민다. 나는 마치 갑자기 뜻밖의 행운의 선물을 받은 듯 활짝 웃으며, 달뜬 얼굴로 편의점을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순간, 심장이 쿵하고 물수제비처럼 통통통 요동을 친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내 손에 쥔 춥파춥스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러고 보니 이런 소소한 멜로스러운 감정들이 내 일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것들이 애초에 나에게 존재하기나 했는지 의심이 들만큼 까마득하다. 에릭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능력이라고 했다. 그런 능력이 원래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고, 이제는 그런 능력을 애써 키워야 하나 하는 의심을 넘어 확신이 드는 나이지만도, 올 가을엔 멜로가 나를 부른다면 한 번쯤은 기꺼이 응답하리라. 공짜로 얻은 막대사탕 하나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 어찌하든 이 사탕은 아까워서 못 먹겠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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