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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go emi Apr 11. 2024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나는 이 말이 참 싫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멈추는 순간 뒤쳐지거나 나아갈 그곳을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숨이 턱까지 차도 다리가 휘청거려도 땀으로 시야가 흐릿해져도 달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어느새 속도와 뱡향 감각을 잃어버린 채 기계처럼 내 머리와 몸이 거침없이 제멋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 저만 잘났지”

“ 이번 프로젝트도 혼자 독차지라면서? ”

“ 저러다 한번 크게 망가진다”

“ 꼴불견이야… 다 한통속이라며?”

“ 팀장님만 힘들어요? 저희는요? ”


어 이상하다. 나는 분명 침대에 누워있는데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저 여인은 나를 닮았다. 아니 분명 나다. 내 옆에 두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아 잠든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 그리고 보일 듯 말듯한 희미하고 슬픈 미소를 머금고 가볍게 쯔쯔쯔 하고 혀를 차다가, 휴우~ 하고 작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나는 지금 가위에 눌린 걸까? 아님 유채이탈이라도 한 것일까?


“ 그런데, 어젯밤에 통화한 거 기억나? 급히 일정 조절할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뜬금없이 해외출장 중이라고 횡설수설했잖아. 김팀장 이틀 전에 귀국한 거 아니었어?  갑자기 다시 또 나간 건 아니지?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 ”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난 정말로 어젯밤 그 누구와도 통화를 한 기억이 없다. 밤낮인 바뀐 10일간의 해외 광고촬영에서 돌아온 후,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며칠째 잠을 설치고, 어제 늦은 퇴근 후에 샤워를 하고, 출장길에 근처 약국에서 사 온 수면유도제를 두 알 먹고, 침대에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전화 통화라니? 놀란 마음에 전화기 속의 통화기록을 보니 어젯밤 11시경 통화를 했다. 그것도 30분이 넘게… 수면제 때문일까? 조금은 섬뜩하기도 한 이상한 일이 자꾸 생긴다. 


좋은 일이 생기기 전에 반드시 사전에 징후를 보이듯 나쁜 일 또한 그러하다. 이것은 불길한 징후임에 틀림없다. 가다렸다는 듯이 연이은 프로젝트 실패 그리고  팀원의 이탈과 뜬금없는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조여 온다. 달려도 달려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숨을 쉴 수가 없다. ‘ 그만 멈춰. 이러다가 미처버리거나 너를 잃어버릴 거야’ ‘멈추면 난 낙오자야. 갈 곳이 없어.’ ‘아니야, 갈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야’


‘ 자 일단 멈춰 서고 쉼 호흡을 하고 차분하게 앞을 보는 거야. 저기에 또 다른 길이 있잖아. 이제 그곳으로 가면 되는 거야. 지금처럼 무작정 달리지 말고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내디뎌 보는 거야.’ 내 몸속감옥에 갇혀서 숨죽여 살던 또 다른 내가, 점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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