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 코끼리> 다시 쓰는 그림책 서평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8169.html
그림책방 노른자 책방지기 대표로 '한겨레21'2020년 설특대호에 그림책 추천을 하였어요
가문의 영광이었지요
전에 쓴 적 있는^^ 좋아하는작가 고정순 님의 <철사 코끼리> 서평을 다시 썼지요. 잡지로 확인하니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공간에서는 나의 화법으로 써도 되지만 전혀 독자를 생각하지 않은 서평이었어요. 남편이 조심스럽게... "나는 그림책을 모르는데 이렇게 추천해주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나의 세계에 푹 빠져 그림책 독자만을 위한 서평이었지요. 한겨레 21 독자를 위한 서평이 아니었습니다.
반성 좀 하고요 ^^;;
이곳은 제 공간이니 저의 화법으로 쓴 글을 남겨둡니다...
“책방지기님, 그림책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책방을 찾는 이들에게서 이런 부탁의 말을 자주 듣는다. 그때마다 그동안 읽은 수많은 그림책 중 주저 없이 <철사 코끼리>를 추천한다. 어른들에게 추천하는 그림책 <철사 코끼리>는 ‘다크 그림책’의 대표 작가라 불리는 고정순 작가의 작품이다. 돌산에서 고철을 주우며 사는 가난한 소년 ‘데헷’이 자기 분신과도 같은 코끼리 ‘얌얌’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데헷이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은 철사로 만든 얌얌을 끌고 다니는 것이다. 데헷의 손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데헷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그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데헷은 한동안 철사 코끼리를 끌고 다니며 일종의 고행 같은 시간을 갖는다. “철사 코끼리가 지나갈 때면 땅에 끌리는 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치고, 사람들은 길을 비켜야만 했습니다.”
얌얌을 대신할 수 없는 철사 코끼리
그러나 철사 코끼리는 얌얌을 대신할 수 없다. 그걸 데헷도 안다. 모든 이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슬픔으로 가득 찼던 소년의 마음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나의 슬픔이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고 있구나.’ 데헷은 큰 결심을 한다. 한동안 끌고 다니던 철사 코끼리를 삼촌의 대장간 용광로에 밀어 넣는다. 삼촌은 철사 코끼리로 종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종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슬픔이 작아지고 죽음을 수용해 단단해진 데헷은 더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자기 몸보다 더 큰 철사 코끼리를 끌지 않아도 된다. 종소리를 들으며 일상을 살아가고 가끔 얌얌이 너무 보고 싶으면 종으로 곡을 연주하는 데헷을 상상한다.
고정순 작가는 데헷처럼 아픔을 직면하면서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내라고 이야기하며 응원을 잊지 않는다. <아빠는 내가 지켜줄게> <엄마 왜 안 와>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등 많은 전작에서 택배일 하는 아빠를 지켜주고, 일하는 엄마를 지지하며, 소방관 아저씨의 노고를 잊지 않고, 흔들리는 모든 이에게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한다.
“어떤 분이 아빠를 잃은 아이가 죽음을 다룬 그림책을 보고 위로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9월 책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고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죽음과 상실 그림책이 아이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내가 충분히 슬퍼하지 못할 때 누군가가 대신 아파해주면 그게 나에게 위로와 슬픔 극복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사 코끼리>는 갑자기 찾아온 이별에 소년이 충분히 슬퍼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슬픔을 극복해 다시 살아가는 희망의 메시지다.
슬픔 나누는 일 꼭 배워야 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울고 있을 사람에게.” 그림책은 작가가 이처럼 나직이 읊조리며 끝을 맺는다. 우리 사회에는 기쁨의 순간보다 슬픔의 트라우마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기쁨을 나누는 일은 배우지 않아도 사는 데 무리가 없지만 슬픔을 나누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사람의 일이다.”(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이 말처럼 아이들에게 슬픔을 나누는 일을 그림책으로 배우게 하는 것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방법인 것 같다. 이는 어른에게도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