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하였다.

우리, 책방 할래?

"우리 책방 할래?"


지역 독서동아리 지원했다가 떨어진 엄마 셋이 모였다. 한 명의 공방에서 우리끼리 동네 도서관이라 칭하고 각자 집에 모셔놓은 좋은 책들을 모았다. 또래들이었던 세 명의 아이들이 모여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찢기도 하고 책 읽고 난 후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공방 주인장인 1호가 우리에게 던진 말이다.


"책을 팔아 월세를 낼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당시에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우리 집, 온갖 잡다한 사건사고와 매월 월세와 인건비를 충당하느라 늘 고생이라서 장사를 하자고 하니 문득 겁부터 났다. 아이가 어려서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책'파는 장사는 너무 험난한 길 아닌가.

10일 동안 생각해보기로 하고 헤어진 후부터 '책'이라는 한 글자가 떠나질 않았다. 두둥실 'ㅊ' 'ㅐ' 'ㄱ'이라는 자음과 모음이 흩어졌다가 헤쳐 모이기를 몇백 번. 결론은 늘 긍정으로 가는 나다.

책방을 하면 좋은 점 백만스물아홉가지나 되지만 역시나 장사의 핵심은 돈 버는 것인데 책 팔아 돈 버는 일은 스티브 잡스가 해도 불가능이라 생각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책을 좋아하지만 표지만 좋아하는지 편독이 심해서 이렇다 할 문학작품 하나 소화하지 못하고 책 사는 걸 좋아 하지만 서가에 나를 기다리는 책은 먼지떨이가 있어야만 정리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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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가,

인생의 키워드가 '커피'에서 '책'으로 바뀌기 시작한 열흘이었다.

그래, 3명에서 각자 아이들 학원비를 절약하면 책방 월세는 기본으로 감당할 수 있으리라.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공동육아를 지향하면서 우리 나름은 일종의 실험을 하기로 하였다.

경단녀 세명이 이름 석자를 걸고 할 수 있는 일이며 각자 관심 있는 분야에 공부도 하고 주변의 고급인력을 소환하여 우리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수업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3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충분히 가능하기도 한 도전이었다.

아이들은 책방에서 커갔다. 오랜 시간 머물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있는 곳, 엄마가 선생님이 되기도 하며 엄마가 일을 하여 돈을 버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엄마에 대한 존중이 조금씩 자리 잡는 것이 보여 비록 돈을 벌지 못한다 해도 나는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책 파는 영업에 집중하지는 못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커가는 곳이 책방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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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생의 많은 지점들을 통과하여 돌아온 곳은 책이다.

나의 유년시절 2층 양옥집에서 살았을 때 우리 집 1층이 만화방이었고 그곳에서 보냈던 수많은 시간이 나를 지금의 이곳으로 이끈 게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만화계의 초창기 작가들의 모든 작품과 하이틴 로맨스를 섭렵한 곳. 계몽사 전집이 유일한 그림책이었던 우리 집의 책 목록 스펙트럼이 순식간에 확장된 곳.

그곳에서 보냈던 사춘기 시절 3년이 나에게 책이 주는 위안과 안전함을 잊지 않게 한 마음의 씨앗이 된 것 같다.

3년째 맞이한 동네책방의 현실은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너무나 청정해졌다. 모임으로 유지되던 책방 영업이 각종 모임이 취소되어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그럼에도 뚝딱뚝딱 계획을 세우고 기획을 하는 시간들이 있어 행복하다.

아직은 할 수 있는 게 많고,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가고 있는 지금. 열심히 쓰기 모임을 구상 중에 있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님을 모셔서 쓰기 공부를 하며 올해를 야무지게 보낼 참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쯤이면 올해의 반이나 가버린다는 게 서글프긴 하지만 농축된 반년을 보내리라 다짐하며 엔진을 끄지 않고 있는 중이다.


5월 한 달 예열을 더 하고 성큼성큼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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