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걸고 밥벌이를 하고 싶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식들'이라고 해주면 재미없겠지?

나는 '엄마' 이기전에 '나'니까 내 이름 걸고 무언가를 했을 때 칭찬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요리나 청소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 참 좋으련만 11년 차의 주부도 파워 블로그의 친절함이 없으면 한없이 부엌 앞에 쪼그라져 있다.

청소 또한 그러하다. 분에 넘치게 큰 평수라 생각하며 공간을 한껏 누리고는 있지만 청소를 할라치면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매일의 청소가 이틀로 텀이 생기고 걸레질은 주말의 큰 행사이며 그때마다 남편의 잔소리는 나의 노동요다. 이 모든 것들은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고 그 누군가는 얼마 안 되는 가족 구성원 중 나 일수밖에 없다. 방치하기엔 속이 뒤집어지고 한 번의 끼니만 걸러도 쿠데타가 일어나는 줄 안다.


무한반복의 굴레 속에 일종의 탈출 선언한 일이 있었으니

'나 작가 되고 싶어.' 이 한마디.

오래 걸리는 일이고 내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니 아이들 건사하는 백만 스물한 가지 중 스물한 가지만 네가 해라. 콧방귀를 뀌는 남편은 바깥 노동의 일부와 월급의 일부까지도 나누자고 역제안을 했고 나 역시 여기서 콧방귀를 뀌었다. 타협하기 힘든 지점이 돈과 관련된 노동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주 미세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선언을 하고 난 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조금(실로 아주 조금이다) 늘어났고 밥하기 힘들다고 할 때 기꺼이 라면을 먹었다. 참고로 남편의 첫 직장은 (주)농심으로 점심때마다 토하면서 라면을 먹어 우리 집에는 금기시하는 음식이 라면이다. 10여 년 동안 싱크대 간식 칸엔 라면이 없었다.

저녁 늦게 컴을 켜고 웹서핑을 하여도 남편은 내가 글감을 모은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기특한 지점도 있어서 그냥 선언해버린 게 오히려 잘된 일인가 싶기도 하였다. 당장 무엇도 아니지만 5년 후에 어쩌면 세련된 문장과 위트 있는 소재의 에세이 작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이름으로 글을 쓰는 경험을 아주 조금 하게 된 이후 마감 있는 삶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독자가 있고 활자화된 내 이름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은 브런치에서부터 확장되어 가고 있긴 한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좀처럼 방문자와 좋아요가 늘지 않음에 좌절한다.

글을 쓰겠다는 선언은 어쩌면 나와 타협한 일이기도 했다.

일상의 것을 잘 해낼 수 없는 부족하기만 하며 '엄마'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울 때마다 그럼 잘하는 것이 무언가? 자문하게 되었고. 그래서 본연의 내 이름으로도 잘할 수 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곤 했었다. 엄마로서 자격미달이지만 박성혜는 일을 하고 있지. 결국 나답게 해 주었던 것은 직업이었다. 직업을 갖고 싶은 거다. 오롯이 혼자 해낼 수 있는 일 그것이 밥벌이와 연결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일과 가정, 아이와 나 그 어디쯤에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두 아이의 엄마'라는 타이틀을 두고 싶었던 거다.

선언은 당당하게. 그것이 사기일지라도.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찬란하리라는 꿈을 안고 꿈에 투자해본다.


남편은 욕망이자 사기인 나의 작가선언을 내심 지지해주는 것 같은데 이 수가 언제 틀리지 모르겠다. 가끔은 맛난 음식으로 안정감을 주어야 할 텐데 요즘 요리가 안 풀린다. 코로나 때문 혹은 쌈박한 요리 블로거를 만나지 못한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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