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직딩 청산기

실패를 말하라고 하여 공황을 들추었습니다.

지하철이 온다. 심호흡을 하고 ‘나는 할 수 있다’를 열 번 정도 맘속으로 외쳤다. 25분만 잘 가면 나의 공간에 도착할 수 있다. 그깟 25분이 뭐 대수라고. 못 앉아가면 쉬엄쉬엄 다른 역에 내렸다 가야지. 오늘 안으로 집에만 가면 된다. 지하철이 왔다.

"대리님, 같이 타요."

신발이 바닥에 붙어버렸다. "아……. 잠깐, 미안해. 나 준비가 더 필요한 거 같아." 측은한 눈빛으로 동료들이 먼저 탔다. 나 조금 더 있다가 탈게. 그렇게 지하철을 두 번 정도 보내고 드디어 용기를 냈다.

다음 역은 1분이면 돼. 1분은 짧아. 난 죽지 않아……. 실제로는 죽지 않는다고. 뇌의 오작동이야. 괜찮아.

호흡이 가빠온다. 아무런 자극도 없고 그날따라 사람도 많지 않아 닭들처럼 끼여 타지도 않았는데 또 시작된다. 기분 나쁜 축축한 땀이 쏟아진다. 현실인지 느낌인지 몰라 손을 대보니 물기가 있다. 차가운 땀이다.

30초면 돼.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극심한 공포감이 몰려온다. 유체이탈되어 나를 바라본다.

눕고 싶다.

5초면 된다.

누웠다.


누군가가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주었다. 정신을 차리니 몇 분지나지 않아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다리를 끌고 지하철 밖으로 나와 팀장한테 전화를 했다. 너무 아파서 병원에 들렀는데 곧 들어갈 거라고. 오늘도 지각이다. 이렇게 지각이 잦아지면서 저기압 때문일까라는 나의 판단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만원 버스, 지하철, 승강기. 이제는 회의실에서도 사단이 났다.

‘마케팅팀 회의실에 모여라 ‘ 회의실 문턱에서 멈춰 섰다. 웬일인지 이 턱을 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밀려오면서 축축한 땀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진다. 이건 뭐지.... 저 공간은 1.5평 남짓 감옥 같이 느껴졌다. 가슴이 옥죄어 오며 숨이 가쁘고 공포감이 밀려온다. 결국 문 앞에서 누워버렸다.

나는 발작을 다섯 번이나 하고 병원을 생각하였다.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정신과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게 '괜찮아'보이진 않겠지. 그러나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이 삶에서 낙오할 것 같았다. 내 앞은 낭떠러지다.

정신과는 우울증 약을 타러 온 노인들이 거의 전부였으며 내 얘기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의사가 눈도 안 마주치고 증세를 묻는다. 판단은 5분도 채 안되어 내려졌고 릴랙스 하라며 약을 준다고 했다. 내가 당신을 믿을 것 같은가. 환자의 눈도 마주하지 않는 당신은 돌팔이다.

약 먹어도 별 차도가 없어 조금 먹다 끊었다. 출근길 집을 나선 지 10분도 안 돼 차가운 길바닥에 드러누운 날 아침, 세상이 내려앉은 마음으로 무단결근하고 병원에 찾아갔다. 앉자마자 의사와 인사도 나누지 않고 내 얘기를 모터 돌린 듯 한참 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은 내 정신이 아니었다. 무엇이라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의사가 궁금해하지도 않은 나의 기질과 성격과 일상과 패턴 그리고 이 상황이 된 원인을 스스로 짐작 판단하여 마구 쏟아냈다.

그제야 의사는 내 눈을 보며 "그랬군요. 힘드셨겠어요. 교감신경과 비교감신경의 부조화 때문이에요. 공황장애 중증인데 시간이 필요해 보이네요. 회사 생활이 맞지 않으신 거 같아요 "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단지 이거였을 수도.

“힘드셨겠군요.”

33년 동안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다들 그렇게 치열하게 사니깐 오작동이나 하는 별난 내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독립한 지 10년여 동안 하고 싶은 일 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돈도 못 모으고, 딸 셋이 흩어져 살며 결혼도 안 하고 엄마 아빠 생사 확인만 하는 정도니 맏이로 집 생각하면 맘이 무거웠다. 그래서 몇 번의 시도 끝에 대기업 경력직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제 돈을 벌어야지 생각했지만 이 조직에서 나는 벽에 부딪쳐 허우적대는 새였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줄 세우기 하느라 바빴고 나의 액션으로 일이 굴러가던 작은 조직과 달리 의사 결정하는데도 반백년이 걸릴 지경이었다. 인수합병의 시기를 지나면서 나처럼 산전수전의 경험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은 스카이 출신 직원들에 밀려 도태되어야 하는 부품일 뿐이었다. 그들은 ‘라인’으로 둘러싸인 든든한 백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저 열심히 챗바퀴를 돌리고 있는 부품. 돈을 벌려고 왔더니만 자존감이 바닥을 쳐버린 것이다. 나는 점점 작아졌다. 대기업의 조직문화와 나는 전혀 맞지가 않았던 것이다. 공황장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자체 결론 내렸다.

결국 회사를 나오고 나의 발작이 멈추었다는 슬픈 사연으로, 독서모임에서 아주 가끔 소환되는 정신 병력으로 남은 시간들이다. 인생의 낭떠러지에서 한줄기 빛 같은 옆팀 남자, 지금의 남편을 만났으니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겸사겸사 회사를 그만두고 나이 찬 이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나의 지병도 책임져주겠노라 장담하니 믿음이 짧은 순간 백배의 속도로 왔다. 글감이 된 공포는 결혼 이후 한 번도 나를 찾아주지 않아서 참 다행이고 감사했다.

누군가 죽음이 오고 있는 그 찰나의 공포를 아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경험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10년여 년 전의 힘겨웠던 시간들이 뚜렷하게 내 몸속에 각인되어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슬쩍슬쩍 그것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면 나는 재빠르게 알아차린다. 마흔이 넘고 뇌가 가짜를 진짜인척 오작동하지 않으니 ‘나이 먹으니 살만하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그때는 많이 서툴렀고 조직에 나를 맞추려 부단히도 애썼나 보다. 나는 나인데 말이다. 몇 번의 이직점프로 나의 명함에 누구나 다 아는 마크가 새겨졌다고 한들 나는 행복은 잠시뿐이었고 나의 10년의 직장생활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지금 새로운 10년의 인생을 경험하고 있지만 아직 그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나로서 살고 있고 대기업 마크가 아닌 소박한 동네책방의 명함과 동시에 누구의 엄마로 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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