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일상은 얼마나 변화해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작업(1)
잦은 비와 태풍으로 여름을 축축하게 보내고 있던 8월 어느 날이었다. 광복절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코로나 확진자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령되었다. 대구에서 급격하게 퍼지던 그 상황과는 또 다른 양상이라 폰에서 자주 울리는 경보음이 불쾌하기 시작했다.
2.5단계 3일 차였다. 남편 얼굴이 흑빛이 되어 집으로 들어왔다.
“점심때인데도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오지 않아. 그걸 바라보는 게 힘들다”
우려하던 일이었다. 괜찮지 않다. 하루 벌어 그날의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는 이 현실에서 카페 사업을 하는 우리 집은 정말이지 어둠의 시간이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일주일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고 기다리는 일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누구를 욕할 수도 없다. 너, 나, 우리 모두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지 않은가.
남편은 6개월째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눈에 다래끼와 입안에 염증이 떨어지지 않고 번갈아가며 널을 뛴다. 정은경 본부장처럼 남편 역시 그녀와 같은 양상으로 머리 새치 눈이 하얗게 내려앉는 변화가 있었다. 비타민을 챙겨주고 저녁밥에 신경을 쓰고 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프리랜서 일에 조금 더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코로나는 잠깐의 ‘사건’ 이 아니다. 8월의 마지막은 그렇게 더디게 갔다.
8월 마지막 날 여의도에 요식업을 하고 있는 동생이 말했다.
“언니, 직원이 다 나갔어. 지우 유치원 하원하고 좀 오래 맡아줄 수 없을까?”
이쯤 되면 나의 육아로 인한 괴로움은 이미 소소한 투덜거림으로 전락하고 만다. 유치원 하원 하는 3시부터 5시까지 아이들을 픽업하여 간식을 챙겨주고 놀아주고 있다.
그 많던 직원은 다 어디로 갔을까? 북적거리던 점심시간도, 줄 서서 메뉴를 고르던 손님도, 동시에 많은 것을 처리하던 직원들도 올해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동생은 덤덤하게 말했지만 빚으로 시작한 썰렁한 가게를 바라보는 일은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야지”
여기까지 말하고 더 이상의 토를 달지 않았다.
9월 첫째 주다 2.5단계를 지속한다고 하였다.
첫째 아이는 지난해 성적표도 못 받고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후 일주일에 한 번 가던 학교도 가지 않는다. 유치원은 보내고 있었는데 이 험난한 시국에 유치원을 보내는 매정한 엄마로 낙인찍혀 요번 주부터는 아무래도 집에 데리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큰애가 수학 과목의 분수를 동영상으로 배우고 있는데 자기는 이해가 안 간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 주 내내 수학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나에게 푸는 듯했다.
운동장과 놀이터가 삶의 터전인 듯 늘 뛰어놀기만 했던 아이는 어느새 집순이가 되었다. 그렇게 집순이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아이는 친구와의 소통 없이 유튜브를 보며 사춘기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아이만 이렇게 되었나 불안함이 머리를 때릴 때 다시 코로나는 악화된 것이다.
나는 괴롭고 언제든 훌쩍 떠날 차비를 하고 있으며 그 계획을 노트 가득히 적어놓고 되돌아올 거라는 일상을 기다렸다. 그러나 헛된 바람이며 무지함의 발로라는 것을 요번 시간 동안 알게 되었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무실에서 일 좀 도와줘.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한 명을 내보냈어”
4명이 전부인 사무실에서 한 명을 내보내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쌓이게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 내일도 있다는 거 알고 있지?” 일주일 일대일로 출근할게 나의일도 둘째 유치원비만큼은 벌고 있잖아”
나의 일이라는 것이 남편이 생각하는 가성비가 떨어지나 내 존재가 유지되는 소중한 일이다.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 남편과 나는 적당히 타협을 한 뒤 사무실에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둘째가 유치원에 오는 시간을 맞춰야 해서 점심밥은 먹지 않고 전력투구 한다. 첫째 아이는 원치 않던 자기 주도 학습으로 오전 시간을 마무리하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에 영어공부와 만화 보기를 번갈아 하며 나를 기다린다.
이전으로 되돌아가기엔 먼 길을 왔다. 다음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시간을 견디며 나의 엄마 아빠가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위해 노력했노라고 말해야 한다.
나의 일을 놓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것이 옳은 일일까. 오늘도 생각해본다
쓰레기가 산이 되어 매주 월요일 아침 우리를 맞이하는 아파트 풍경은 늘 나를 죄인같이 느껴지게 한다. 코로나라고 해서 돈과 사람은 사라진 게 아니라 이동한 것이라고 자기 계발 강사들은 말한다. 요번에도 그 이동한 곳을 찾아 우르르 몰려가야 할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느냐를 짚어봐야 할 때 인가보다.
나의 코로나 8월은 잔혹기의 끝판왕 시작이지만 담담히 맞이하였다. 코로나 이후 계절은 세 번 바뀌었구나. 현재에 충실하고 코로나 때문에(덕분에?) 맑은 가을 하늘 마음껏 담아야겠다.
<취미인데 일이 된>
<일인데 취미가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