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림책<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죽음을 이야기하는 다크 한 북토크를 준비하고 있다.

고작가님의 그림책 이야기는 담담하면서도 메마르지 않은 축축한 감성이 묻어있다.

목소리톤이 주는 매력이 있고 진정성이 뚝뚝 흘러넘치는지라 매번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아침에 죽음을 이야기하면 좋은 점 중 하나, 적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밀도 있는 삶을 생각하게 된다. 시간의 농도가 짙어지고 사유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는 사실.

'죽음은 슬픔이다'의 명제를 벗어나는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최근에는 그림책을 보면서 다른 감정도 올라오곤 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시작. 그리고 어떻게 죽느냐도 살면서 만들어가야 하는 의무인 것 같다.


고정순 작가의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요번 책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펼치고 쓰다듬어보았다. 사실 고백하자면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나는 애타게 기다려왔다. 지난번 '작가의 방'에서 늠름한 산양의 젊은 시절 그림 한 장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슬픈 시선에 사로잡혀 '작가님, 이 그림 주세요.'라고 했다. 판화 첫 번째 장이라 약간의 비용으로 그림을 하나 얻어서 간직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는 그림 한 장으로 그림책의 가치를 미루어 짐작했다. <가드를 올리고>만큼이나 반향을 일으킬 작품이라고.

그리고 내가 애정 하는 그림책 <철사 코끼리>의 시즌2 쯤 될 것 같은 이야기라고 예상했다.

<철사 코끼리>는 젊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잃고 애도하며 죽음을 경험한 이야기라면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는 생에 끝에 있는 '내'가 죽음의 자리를 찾아가는 마무리의 과정이다.


하얗게 가득 매운 면의 여백이 애잔하게 나와 마주한다.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산양이라.

죽기 딱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산양.

들판도 아니고 높은 곳도 아니고 초라함이 비친 강가도 아니었음을 알고 되돌아온다. 가장 나다운 공간이었던 '집'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세상과의 이별하며 끝을 맺는다. 나다운 모습의 공간이 초라하다고 생각되지만 격렬하게 세상과 직접 맞닿들이고 싸운 후의 나를 온전히 받아준 가장 품 넓은 곳이다.


내가 죽을 곳을 찾으러 다니는 산양은 얼마나 당당한가!


쪼그라지고 슬픔으로 점철된 뒷모습이 아니다. 작가님을 많이 만나왔고 그렇다고 잘 알지는 않지만

산양은 딱 고정순 작가라는 생각이다. 그녀가 지팡이를 짚은 어느 날 표지의 산양처럼 마음이 몇 번이고 엎어지고 휘청거렸으리라.

판화의 특성상 채우지 못한 면과 채우지 않은 면들.

고요한 기운, 무심한 정적, 그리고 충분한 여백은

차라리 가장 비장하다

차라리 집으로 가자


아이러니한 순간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도 벌어진다.

<할머니의 팡도르>도 생각이 난다. '죽을 자리'가 아닌 '죽을 타이밍'에 관한 이야기인데 명랑한 할머니가 요리를 놓지 않고 사신에게 맛을 봐달라며 죽음을 유예하는 밀당의 이야기다.


나는 이 책에 대하여 할말이 많구나.

나는 죽음에 대하여 마주할 용기가 생긴 것이구나.

메모장에 한가득 끄적임의 단어가 정신없이 적혀있다.


오늘 아침에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긴 글을 쓰려 메모를 하면서 먼 친척의 부고를 들었다. 3년 만에 연결된 수화기 넘어 아재의 목소리에서 숙연함이 전해와 먼저 다급히 물었지. 아빠의 사촌누님의 별세다.

죽음은 도처에 널려있으며 유난스럽거나 별나지도 않다.

가장 편안한 곳에서 평화로운 타이밍에 그렇게 맞이할 수 있길 희망해본다.

산양이 있었지. 젊고 멋졌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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