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매일은 '화양연화'

정희진 그림책 <막두>

아름다운 그림책을 좋아한다. 명화를 소장할 수 없어도, 유려하게 직접 그릴 수는 없어도 아름다운 그림책은 최저가로 최고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되어 책방에 있어도 불구하고 하나 더 구입하여 내 방 책꽂이에 모셔둔다. 때론 표지가 보이게 전면으로 홀로 눈에 띄게 세워둔다. 아이들이 관심 없다 해도 동선마다 '스윽' 눈에 걸릴 수 있게 놓아두는 나만 눈치채는 장소가 있다.
그림이 아름다워도 행복하지만 이야기가 아름다운 그림책은 마음을 뒤흔든다.
그럴 땐 쓰고 싶어 진다. 여기저기 자랑하고 길고 긴 문장을 만들어 내고 싶다.



막두.jpg

<막두>는 이야기와 정서가 아름다운 책이다.

<막두>를 처음 만났을 때 여기저기 평가하기 바빴다. 제목 폰트가 아쉽네, 그림의 마감이 아쉽네. 과해 보이는 막두할머니의 꽃고쟁이를 평가하 듯 그렇게 그림책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 책을 읽고 덮었을 때, 문득 일상의 틈 사이로 막두할머니가 보이기 시작했다. 피난민 이야기를 듣거나 시장 상인 어르신을 보거나 좌판을 펼쳐 채소를 다듬고 계신 할머니를 볼 때 막두 할머니가 보였다.
거칠고 생명력있는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울고 웃고 살아내는 막두 할머니의 삶의 방식이 인생의 달관자 같은 느낌이었다.

때론 투박하고 때론 주책이어도 밉지 않았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책과 유머로 삶의 팍팍함을 승화하셨더라면 많이 사랑해드렸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쟁을 겪었고 가난을 통과하였으며 치매를 얻어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원망만 남긴 채 지금은 안 계시지만.

막두는 열살 때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끝으로 피난을 왔다. 영도다리 앞에 자리를 잡고 억척같이 살아내며 가족을 기다렸다. 열살의 소녀는 다리가 올라갈 때면 쿵쾅되는 가슴을 부여잡고 익숙한 그 모습을 찾아 해맸으리라. 소녀는 어른이 되고 다시 할머니가 되어서도 다리 앞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는 담담해진 가슴으로 더이상 올라가지 않은 다리를 마주한 채 스스로 살아내는 위력을 발휘하고 계셨다.
한 사람의 삶이 눈물이 쨍하게 위대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단한 학자나 아픔을 승화한 강인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당당하게 세월을 견뎌온 대한민국 여자들의 선두 주자였기에 막두할머니의 삶이 더욱 빛나보였다
'나 답게 살아갈련다. 세상아 덤벼라' 이것이 할머니의 인생관이 아니었을까 .


-시끄럽다 가시내야, 니 궁디에서 꽃 튀어나오겠다-


'어린 막두'는 슬픔이고 고통이고 좌절이지만 '할머니 막두'는 당당함과 의연한 인생의 대선배이다.

c_j7bUd018svc1hc8wa20e16j9_ozce92.jpg
영도다리.jpg


최근 <아무튼 언니>를 재밌게 읽었는데 오버랩되는 정서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남자보다 몇곱절의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 막두할머니 역시 그렇게 살아온것이다. 그림책 이면에 보여지지 않는 팍팍한 시간들을 가늠해본다. 십대에 홀로 시작 된 시장바닥 생활은 살아남아야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결연함으로 이겨냈을것이고 가장으로서의 삶과 자식들의 뒷바라지 등은 계속되었으리라.

도미 비늘 벗길 때 화면가득 날리는 굵고 단단한 비늘은 할머니의 눈물 같기도 하여서 유심히 보게 되는 장면이다. 엉덩이에서 꽃이 피어나와 나에게 윙크를 날리는 것 같은 할머니들의 현란한 패션스타일은 사랑스럽다. 게다가 앞뒤 면지에 그 꽃이 찬란하게 화면을 가득 채운다. 꽃은, 고통속에서도 할머니의 인생은 늘 화양연화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투박해보이는 그림책 한권이 일상에 잔잔한 틈새를 메꾸어 준다.
어쩌면 예술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 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멋진 예술작품 하나 발견해내어 뿌듯하다.

keyword
이전 05화십 대들에게 건네고 싶은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