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라지지 않아.

고정순 그림책 <나는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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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림책이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의 과제가 아무튼 시리즈였는데 나는 <아무튼 그림책>으로 정했다. 요즘 그림책이 맘속에 많이 들어온다.

고정순 작가의 신간을 만지작거렸다. 작가님의 귀신 이야기는 분명 슬플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누구보다 먼저 읽어야 마땅한 신간을 왠지 들춰보기를 미루고 있었다. 홍보 시기가 안 맞아 출판사가 행사를 미루고 있는 가운데 좋아하는 그림책 지인이 추천글을 쓰셨다. 그래서 다시 잡았다. 애 스승님의 작품 만나기를 미루고 미루는 이유를 찾아본다.

사랑이 넘쳐 슬프기만 한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기 때문일까.

무표정한 남자아이 옆에 나란히 있는 '나는 너의 친구'라는 듯한 귀신 그림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외로움에 사무친 아이는 작가일 수도, 우리 아이들 일수도, 나 일수도 있겠다.

한 장씩 넘겨본다. 꾹꾹 눌러서 화면 가득 채운 크레파스 그림은 작가님다웠다.

한결같은 근면스러움을 2년 동안 이 안에 꾹꾹 눌러 담으셨구나. 사라질 것 같은 아이의 외로움을 마치 귀신이 되어 달래주기라도 하 듯, 사라지지 말라고 주문을 외우 듯.


얼마 전 아동학도 뉴스를 보고 땀구멍이 막히고 목울대가 메여온 느낌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오늘 저녁뉴스에도 때리는 엄마에게 벗어나 맨발로 도망쳐 나온 아이가 있었다. 아이 잠투정이 심하다고 돌쟁이 아이를 베란다에 방치하고 부부싸움 후 갓난아이를 상자에 넣어두고 우유도 맥이지 않아 탈진하여 세상에 보내고 묶고 가두고 때리고.......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해자의 한 명이라도 된 듯 죄책감이 밀려오는 것은 엄마이기 때문일까, 어른이기 때문일까.

사라지는 아이들, 귀신같이 투명인간이 되어 우리가 사는 곳곳에 안전한 척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아이들 <나는 귀신>을 보면서 뉴스 속의 사라진 아이들이 자꾸 떠올랐다.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아파한다. 사실 작가의 의도는 더 확장성이 있다. 귀신 놀이하며 놀아주는 친구 , 그 친구 옆에 다른 친구, 다시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고... 결국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아이에게 폭언도 폭력이라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제어하는 것이 언제나 힘들었다. 오늘도 다잡고 내일도 다잡아야 하는 어른의 도리이다. 매일 참회와 후회가 가득한 시간들이 가고 있다. 외로움에 귀신이 되는 아이들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가득한데 어찌할까.


<나는 귀신>을 보다가 여기까지 왔다. 천천히 곱씹으며 본 그림책을 거꾸로 그림만 찬찬히 뜯어본다. 귀신이 보인다. 전작 <시소>에서 갑자기 나타난 놀이터 친구 , <철사 코끼리>에서 구원의 '종'이 된 코끼리도 보인다. 작가님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단연 으뜸은 <철사 코끼리>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어떤 것을 영원히 울리는 '종'으로 만드는 행위, 귀신이라는 막연한 형태와 비호감적인 것을 사라지는 아이들을 위한 마법의 친구로 만드는 행위. 때론 비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고정순 작가님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아무튼 오늘도 그림책으로 아이를 지키는 임무를 껴안은 채 아파하기도 하고 흐느끼기도 하고 화를 참느라 얼굴이 귀신이 되어간다. 사유를 확장하여 세상을 구한다는 의무로 나와 주변의 아이를 살펴야겠다. 어른의 책무를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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