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맛- 작은 배추야 애쓰지 마.

구도 나오코의 <작은 배추>

씨앗, 너무 애쓰지 마라. 본디 너희는 꽃이 될 운명이거늘
- 박광수의 <앗싸라비아>-



너무 좋아하는 글귀인데 출처를 몰라 미루다가 검색해보니 예전에 인기 있었던 만화가 박광수 씨 책에 나온 글이었더라.

경쟁이라는 세련된 단어 위에 너무 애쓰는 아이들이 많아 짠하기만 한데 그렇다고 손 놓자니 방치 육아 같고... 요즘 고민이 많은 엄마이다.

우리 집은 대치동 다음으로 교육열이 치열한 목동 언저리에 있다. 엄마들은 팔랑팔랑 고학년이 되면 모든 학원을 목동으로 보내며 전학을 가기도 한다. 어느 학원이 좋냐 하는 것은 굉장히 고급 정보로 둔갑되어 아침부터 정보 교환으로 바쁜 엄마들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내가... 아이의 자유 권한을 최대한 주고 엄마들과 교류를 끊은 '이상한 엄마'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너는 존재 자체로 빛나는 생명이니 너의 본성을 거스르며 까지 애쓰지는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최선을 다함과 애씀은 조금 다른 거 같다.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내가 망가지고 내가 없어질 정도로 애쓰진 말자는 이야기다.


요즘 균형 육아가 참 어렵다. 남편이 나의 big picture 가 무엇이 나며 실체 규명에 나섰다. 무슨 배짱으로 아이들을 방치하냐고. 그냥 나는... 10살까지는 하고 싶은데로 놔두고 싶을 뿐이다. 10대에 들어서면 최선을 다하는 부분과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부분에 있어서 일장 연설을 할 참이다. 그전까지는 적당한 시간 배분 안에 최대한 자유롭게 놀게 하고 싶다. 우리 남편과의 교육관에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아서 언제 불쑥 나에게 태클을 걸지도 모르겠다.


여기 작은 배추의 성장, 그 옆을 지켜주는 든든한 감나무에 관한 재미있는 그림책이 있다.

<작은 배추>는 강하고 거친듯한 그림에 비해 귀엽고 다정한 말투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이다. 몇 번을 읽어도 도 다른 메시지로 다가오는 책이다. 어른이와 함께 나누고픈 색감도 너무 좋은 책.

나는 '작은 배추'에 감정이입이 되었지만 그림책모임에서는 많은 분들이 감나무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아마 '엄마'라는 직함을 가진이들이 현재 나를 돌아보며 애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작은 배추.jpg

구도 나오코 글/ 호테 하마 다카시 그림



감나무와 김장철의 배추는 '가을의 맛'에 너무 잘 어울리는 소재다.

'가을의 맛'이라는 주제로 그림책 모임을 가졌었는데 많은 분들이 <작은 배추>를 추천해주셨다.

작은 배추가 다른 친구들처럼 채소가게에는 가지 못했지만 감나무 아저씨의 보호 속에 긴 겨울을 견디자 봄에 샛노란 왕관 같은 꽃으로 피었다는 이야기다.


아이와 똑 닮은 작은 배추.

튼실하고 쓰임이 좋은 배추로 자라 채소가게에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었지만 너무 작아서 혼자 남겨졌다. 하지만 속상해하는 작은 배추 옆에 감나무가 앞으로 올봄에 만날 햇살과 나비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면서 긴 겨울을 함께 있어준다.

인생의 든든한 조력자를 만난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쓰임이 달라질까? 생각해본다. 나의 역할은, 지금은 엄마이므로 우리 아이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한한 응원 기술과 기다림의 미학을 장착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어른으로 세상에 존재한다면 나의 쓰임은 충분하지 않을까.

혼자 덩그러니.jpg


나를도와주는 훌륭한조력자.jpg


'나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좋은 열매(야채)와 되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않아도 돼. 대신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이 되었는 걸.

늦었다고 조급해하지 마. 너만의 꽃을 피우면 돼.


다들 배추꽃을 모르더라. 나 역시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

본디 배추는 김치의 재료이므로 성장한 야채는 홀랑 베어 가서 그 쓰임을 다한다. 그래서 긴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어 피는 꽃까지는 기다리거나 일부러 남겨두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이리도 어여쁜 꽃이 되어 햇살 아래 춤추는 나비와 벌을 맞이하게 되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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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속도'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나만 돌아가거나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 남들은 다 빛나 보여. 나만 빼고.

나는 늘 주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조금 천천히 그 길을 갈 뿐 언젠가는 꽃을 피울 수 있겠지?



꼭대기에 노란 꽃도 가득 피지.
햇살 닮은 나비가 왁자지껄 모여든단다. 얼마나 즐거운지 아니?





인생은 길다.

행복한 순간을 위해 조금 다른 속도로 너만의 길을 가보렴.

너는 분명 무엇이라도 된단다.

나의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에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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