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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7. 2021

내 집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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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의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하여 분양하는 아파트 청약당첨된 후, 오랜 기다림 끝에 2019년 봄 입주를 했다. 결혼한 지 7년 만에 내 집이 생긴 것이다.


양평 더클래스 에듀포레 103동 302호.

무슨 뜻인지도 모를 불필요하게 긴 이름이지만, 뭔지 모르게 있어 보이는 모든 단어들을 총망라한 것 같아 좋은 집에 사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지명, 시공한 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 이름, 교육으로 유명한 목동이 가까운 위치라는 특성이 조합된 것이다.


목동이 아닌데도 '에듀'라는 이름을 붙인 게 소위 집값에 영향을 주는 프리미엄을 영혼까지 끌어모은 작명인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다.


분양 당시 양평동에 10년 만에 분양하는 1군 건설사 신축 대단지 아파트임에도 일부 비인기 세대가 미분양이 되었다.


나는 나름 인기 세대에 청약을 넣어 3:1이 조금 안 되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이 복잡한 이름을 가진 아파트의 주인이 되었다.


분양을 했던 2016년 말.


남편의 극심한 반대는 기본이고, 2008년 금융위기에 이은 10년 주기의 경제난이 곧 닥친다는 위기론이 퍼졌다.


거기에 정부가 집값에 70프로를 대출해주며 집을 사라고 등 떠미는 상황에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밀어내기 한다며 사람들집 사는 것을 망설였던 때였다.


전국에서 분양하던 상당수 아파트들이 미분양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하며 분양을 했었고, 악성 미분양 관리 지역이 따로 있을 정도로 전국적인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내가 첫 딸 은재를 낳고 난 이후 외벌이가 된 남편은 뱃속에 둘째 딸 은지까지 생기자 빚 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혼자 벌어서 네 가족을 부양하는 것도 부담인데, 주택 담보대출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아파트가 중도금 무이자 대출이 되어 계약금만 있으면 입주 때까지 들어가는 돈이 없었고, 입주 때 잔금 치를 돈이 없더라도 전세 세입자구하면 될 거라는 무모한 믿음이 앞섰다.


다른 아파트들을 봐도 분양가보다 입주 후 매매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고,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실거주가 목적이니 내가 들어가 살면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배는 좀 쓰리겠지만.


당시 이 아파트의 25평 판상형 평균 분양가는 발코니 확장 비용 등 기본적인 옵션비까지 합쳐 대략 4억 8천만 원.


계약금으로 분양가의 10%인 4천8백만 원만 있으면 내 집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공기업에 다니는 남편 명의로 마이너스 대출을 받으면 그 돈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다.


결혼해서 첫째 출산 전까지 맞벌이로 모아둔 돈과 지금 사는 전셋집의 전세금을 빼도 대략 2억 원 정도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남편이 30년간 주택 담보대출의 굴레 속에서 바퀴를 돌아야 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지만 나는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꼭 내 집을 갖고 싶었다.


언제부터 집에 욕심이 생겼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마 지금 남편을 만나기 직전에 만났던 세상 제일 나쁜 놈과 이별할 때가 그 욕심의 시발점이었던 것 같다.


두 살 터울 친오빠의 대학 친구였던 그놈, 그놈은 취업하기 전까지 5년 동안 나랑 만나면서 취업만 하면 금방이라도 결혼하자고 할 것처럼 다정하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놈 누구나 다 아는 좋은 대기업에 취직을 한 후, 갑자기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솔직하고 확실한 이유를 대고 떠나버렸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그때의 그 단호한 어투와 차가운 표정. 붙잡을 수 있는 1mm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던 숨 막히던 그날.


아직도 그 이별의 순간이 트라우마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5년의 사랑과 단 하루의 이별. 깊고 진한 그와의 추억만큼 충격도 상당했다.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충격에서 점차 벗어날 무렵, 너 따위 나쁜 놈 보란 듯이 잘 살아보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좋은 남자 만나 번듯한 내 집 한 채 가지고 남 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사는 게 복수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놈이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의지에 조금은 도움이 된 것이 맞는 것 같다.


참으로 고맙다. 이 나쁜 놈아.


몇 년간 남의 집 살이 하며 2년마다 이사를 다니다가 내 마음대로 벽에 못 박을 수 있는 집에 입주하니 그 잔인했던 놈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어쨌든 남편의 끊임없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마트에서 알바라도 하겠다는 의지로 남편을 내 집 등기부에 공동 소유자로 올릴 수 있었다.


집 값이 조금만 떨어져도 날 엄청 원망할 것 같아 두려웠지만, 다행스럽게도 분양 후 입주할 때까지 이 집의 분양권 가격은 꾸준히 올라주었다.


입주를 막 마친 지금의 호가는 분양가 대비 3억 원이 넘게 오른 8억 원 선으로, 1~2년 내 10억 원은 무난히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10억이라니. 10억이라는 숫자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고유명사처럼 부자를 일컫는 말이 백만장자 아닌가.


수십 년간 사람들이 부자로 인정해 주는 그 기준,  백만 달러, 10억 원. 나도 곧 부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


분양 계약부터 3년간 대략 3억 원. 연평균 1억 원이 마치 내가 번 연봉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편이 고생해서 벌어오는 근로소득이 우스워 보이기 시작한다.


금융소득, 부동산 갭 투자라는 고급진 경제 용어에 내가 익숙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우월감을 갖게 해 준다.


억지로 분양 계약서에 싸인한 남편의 태도도 빚이 생긴 외벌이 가장의 부담 대신, 점차 우리 단지와 부동산에 대한 관심으로 변해간다.


퇴근할 때마다 근처 부동산에 붙은 우리 아파트의 시세를 확인하며, 이전 거래가보다 오른 호가를 볼 때마다 신이 나서 내게 말해주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남편을 대역죄인 취급을 하며 그때 내 말 듣기 얼마나 잘했냐고 핀잔을 주지만, 아랑곳 않고 자기는 다 잘 될 줄 알았다며 나만 속 터지는 소리를 해댄다.


그런 통찰력이 있었으면 집 사자고 할 때 훼방이나 놓지 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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