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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7. 2021

공동 명의자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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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세 살 많음.

서울에 있는 공기업에 재직 중.

부모님도 공무원 생활 오래 하셔서 노후 걱정 없음.

2남 중 차남. 결혼하기 괜찮은 남자'


셈이 빠르고 남녀 관계에 밝은 친한 친구가 내 남편을 소개할 당시에 한 멘트다.


경상북도 문경이 고향인 그는 내가 그놈한테 버림받은 후 몇 개월 동안 정신 못 차리다가 막 정신줄을 붙잡은 스물아홉 살 때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다.


그동안 여자 나이 앞 숫자가 3이 된다는 것에 알게 모르게 압박감을 느껴와서 그런지, 스물아홉 살이 되자 누구라도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친구들을 닦달하여 얻은 결과물이다.


키와 외모는 그리 준수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남자를 잘 아는 친구가 말하는 결혼하기 준수하다는 그 조건.


서른 살이 넘으면 뭐 어떻다고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해버렸는지, 첫 만남 후 1년도 안돼 스물아홉 살의 겨울에 그의 여자가 되었다.


물론 전 남차친구의 변심이라는 트라우마가 생긴 내게 그리 준수하지 못한 그의 외모는 '적어도 누구처럼 바람은 안 피우겠구나' 싶은 장점처럼 보였다. 내가 미쳤지.


연애기간이 짧은 것은 지금도 후회막심이다. 조금 더 재보고 따져보고 했어야 할 것을.


6년 간 살아보니 주선자 친구의 얼추 맞았다. 그녀의 말처럼 결혼해서 사는데 치명적인 문제들은 없었으며 준수했다.


하지만 그녀가 계산하지 못한 반대급부도 있었다. 이 남자, 디테일에서 많은 단점을 보여준다.


아들 결혼한다고 전세 얻는데 보태라며 거금을  보태주실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시댁이지만, 도와주신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의무를 당연시 여기는 점 등이 그렇다. 아들은 하나 있어야 한다는 비공식적인 압박을 포함해서.


돈 한 푼 안 보태주면서 바라기만 하는 시댁들도 많으니 얼마나 좋냐 싶지만, 그런 장점과 단점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하는 이 남자가 균형 감각이 전혀 없다.


이 남자의 역량에 따라 내가 그 줄타기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느냐,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희생이 되느냐가 갈리는데 불행히도 나는 후자다.


지난번에도 이런 불행을 내게 안겨 대판 싸운 기억이 있다.


주말에 딸아이들과 함께 동물원에 소풍 가자고 약속해놓고, 어머님께서 문경으로 와서 같이 삼겹살 구워 먹고 놀다 가라고 하시면 ' 엄마한테 물어보고 다시 전화드릴게요'라고 대답하는 그런 류의 남자다.


그놈의 삼겹살.


서울에서는 못 먹는 소고기 맛 나는 돼지고기도 아니고, 애들이랑 한 약속도 있는데 자기 선에서 다음에 가겠다고 적당히 둘러대도 될만한 일을 아주 고맙게도 나를 걸고넘어진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실망 잘 수습해 주는 사람도 아니기에 나만 속이 터진다.


솔직하고, 정직하고, 계산하는 것 없이 우직한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센스 없고 융통성 없는 등 단점도 명확한 이 남자.


센스는 배운다고 배워지는 게 아니기에 나도 이 남자가 센스가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걸 바라면 내 욕심이지.


그냥 실전을 겪으면서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응용만 잘 돼도 성공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자주 속 터지고 가끔은 크게 다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센스가 넘치던 그 나쁜 놈이 아주 가끔은 생각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를 지킬 줄 모르고 사랑이 변하는 그 나쁜 놈보다는 그래도 내 남편이 두 아이의 아빠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좋은 가장이라고 믿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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