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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7. 2021

목동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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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문을 열고 쭈뼛하게 사장님께 인사를 했다. 친정 엄마 같은 인자한 모습이고, 내가 원하는 바를 다 해결해 주실 것 같다.


"여기 더클래스 사는데, 팔고 이사를 좀 가고 싶어서요. 24평 필로티 3층인데 시세가 어떻게 될까요?"


용기를 내는 게 어렵지 막상 입을 떼고 나니, 내가 바라는 걸 꼭 얻어내고 싶어 진다.


"최근에 중층이 10억 5천에 실거래가 됐어요. 3층이니까 10억 정도에 내놓으면 금방 나갈 거 같은데요?"


난 오늘부로 백만장자가 됐다.

부동산 사장님을 대하는 데에도 자신감이 붙는다.


내 집을 팔아주는 것에 더해, 내가 이사를 가고 싶은 집도 구해줄 수 있는지 여쭤본다. 남의 동네 매물까지 알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요즘 시장 추세나 조언 등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물은 것이다.


이름만 '에듀'가 붙은 우리 동네 말고, 교육 여건이 진짜 좋은 옆동네 목동 30평대로 가고 싶다는 내 희망사항을 전했다.


소위 더 좋은 동네를 의미하는 '상급지'로, 그것도 평수를 넓혀 가는 거니 신축은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15년에서 20년 정도 된 구축 아파트 정도는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내가 가진 물건에 대한 자신감이다.


"이거 팔고 대출 조금만 더 내서 20년 넘은 나홀로 아파트 정도는 갈 수 있겠네요. 목동에 친한 부동산 사장님 있는데, 괜찮은 매물 있는지 좀 물어봐야겠네."


겨우 나홀로 아파트?


귀하디 귀하다는 서울의 신축 아파트의 가치가 저 동네 구축 나홀로 아파트에 비견된다는 게, 그것도 대출을 더 내야 가능하다 사실이 충격적이다.


"거긴 시세가 어때요? 대출 최대로 하면 괜찮은 데로 갈 수 있을까요?"


"우리 동네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목동도 신축이나 학군 좋은 곳은 12~3억 이상은 할 거고 투자 가치 있는 재건축 물건들은 15억 정도는 훌쩍 넘을 건데."


사장님은 잘 알지 못하는 동네라고 하면서도 이제 막 백만장자가 된 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를 읊어댔다.


"네? 15억이요?"


깜짝 놀라 사장님의 말을 끊는다.


"요즘 부동산이 워낙 난리잖아요. 원래 목동이 부촌이기도 하고 워낙 학군이 좋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신축이라도 이 동네도 10억이 넘는데, 목동은 더하지."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 동네도'라는 말이 마음에 거슬리지만 내가 받은 다른 충격에 묻혔다.


내가 그동안 아주 큰 착각을 해 온 모양이다. 우리 집 집값이 올라가는 동안 다른 집은 멈춰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장님은 복잡한 내 속도 모른 채 15억짜리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안내한다.


"15억까지는 대출되니까 이거 파는 돈이랑 대출 풀로 받으면 얼추 되겠네."


부동산 사장님이 대출 이야기를 하니 내 집에 대출이 끼어 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그동안 10억이라는 숫자만 보고 달리는 말을 타고 있다가 그 말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2억 원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


이 집을 10억에 팔아도 빚 2억과 부대비용을 빼면 가용 자금은 확 줄어들고, 대출이 된다고 해도 우리 집은 2억 원 이상의 빚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지금도 원금과 이자로 한 달에 백만 원 정도가 나간다. 남편이 힘들게 번 돈에 백만 원을 빼고 나면 지금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조금 있으면 큰 아이가 학교에도 들어가기에 본격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가 된다.


내가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부자가 됐다고 생각했지만 남들은 더 부자가 됐고, 내가 가졌다고 생각한 이 '부'는 부유할 부(富)가 아닌 아닐 부(不) 였다.


내가 가진 것은 팔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냥 모래성일 뿐이었다.


나는 통찰력이 있고 투자 감각이 뛰어난 연봉 1억짜리 특별한 '가정주부'가 아니라, 아주 우연히 운 좋게 집 하나 장만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부동산을 나오자 답답함이 느껴진다. 내가 꿈꾸던 목동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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