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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21. 2022

꿈의 대화

제이케이 장편소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이번에는 그녀가 처음 왔을 때보다 떠난 후의 며칠이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녀가 우리 센터에서 위안을 받고 갔을 것이라고 믿었고, 그녀가 이번에 꾸겠다는 꿈에 다른 부정적인 요소가 개입할 거리가 크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잠을 다 주무시고 아침에 센터를 떠날 때쯤 원하시던 꿈을 잘 꾸셨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내가 센터 상담실에서 잠시 자고 있는 동안 그녀는 자리를 뜬 상태였다.

보통 새벽 3시가 넘어가면 꿈을 꾸겠다고 오시는 손님은 없고, 주무시면서 꿈을 꾸고 계시는 손님들만 계시는지라 안내 직원도 나도 자리에서 주로 눈을 붙인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고 일어났는데, 그것보다 더 빨리 나가신 듯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었다.


다시 오후 7시가 됐다.

오늘 오전에 퇴근을 하고 자동차 정기점검 등 몇 가지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다 보니 출근 전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이 천근만근이고 정신이 몽롱하다. 오늘은 손님이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을 만큼 피곤한 상태다. 남의 돈 벌기가 쉬운 게 아니라는 게 많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찾아오시는 손님들과 10분 정도씩 상담을 하다 보면 기가 빨리고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낮과 밤을 바꿔 사는 삶은 참 힘들다. 중간중간 쪽잠을 잔다 해도 아침에 퇴근해서 집에 가면 제 컨디션이 아니다.

오전에 집에 가서 잠을 자지 않으면 그날은 하루 종일 멍 한 상태가 지속되어 힘들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출근을 해서 상담실에 앉았다.

초저녁부터 첫사랑이 보고 싶다던 남자부터 대기업에서 임원이 된 자신의 모습이 보고 싶다는 만년 과장님, 옆 팀의 유부녀랑 굳이 사무실에서 섹스를 해 보고 싶다는 사람, 자기가 속한 팀의 팀장을 각시탈이 일본 순사 때려잡듯 패고 싶다는 사람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는 날이면, 그날 내가 꾸는 꿈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된다. 사람도 죽였다가 불륜도 했다가 대통령도 됐다가 수험생도 되는 다양한 내용이 꿈에 나온다.

이런 날은 꿈을 꾸지 말아야 한다. 숙면이 절실해진다. 내일 아침에 퇴근하면 오랜만에 G&S 수면연구소에 가서 미연이랑 점심 먹고 출근 전까지 거기서 자다 와야겠다는 생각이 스칠 때쯤,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김연수 님 상담실로 들어가세요."

마침 저번 방문하셨을 때 남편 꿈은 잘 꾸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세 번째 방문이시니 오늘 정도까지가 김연수 님께 제공하는 마지막 서비스라는 말씀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내심 반갑다.

"네, 안녕하세요."

그녀의 표정이 밝다.

"안 그래도 저번에 오셨을 때 좋은 꿈 꾸셨는지 여쭤보고 싶었는데, 그때 어떠셨어요?"

세 번이나 찾아오셨고, 나를 보는 눈빛도 우호적인 게 그래도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셨을 거라는 추측이 강하게 들었다.

"네, 꿈속에서 남편이랑 좋은 시간을 함께 했어요. 원래 원했던 장면보다 더 행복한 순간으로 꿈에 나오더라고요."

어떤 꿈을 꿨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원래 원하시던 대로 남편분이랑 함께 병원에서 임신하신 걸 확인하시는 그런 장면이었나요?"

"그거보다 미래의 시점이었어요. 저도 아직 안 가본 시점.

아이가 태어나고 그 순간을 함께 하는 상황이었어요. 저도 울고, 남편도 울고. 아이랑 셋이 평생 행복하자고 항상 고맙다고 그랬어요."

그녀는 조금 울먹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현재 상황을 알기에 마음이 마냥 흐뭇하지만은 않다.

"저는 아직 못 겪어봤지만, 남자가 가장 감동스럽고 행복한 때가 아이가 태어난 순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김연수 씨는 남편분 뵙고 어떠셨어요?"

혹시나 남편을 보고 더 우울해지진 않았을지 걱정이 됐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이렇게 꿈을 꾸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 순간이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꿈을 꾸면서도 행복했다는 감정이 느껴지고 기억에 남더라고요. 다음 날 일어나니 뱃속에 아이도 태동이 활발해진 것 같고, 아이도 아빠를 보니 기분이 좋았나 봐요."

다행스럽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보다도 배가 더 많이 나와 보인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태어나서 아빠도 한 번 못 보고 자랄 이 녀석이 마음이 쓰인다. 이 센터를 오래 운영해서 저 아이한테도 아빠라는 존재를 꿈에서라도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김연수 씨가 오늘은 어떤 꿈이 꾸고 싶으신지 궁금했다. 마지막인 만큼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고 싶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음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오늘은 어떻게 오셨을까요?"

"이제 남편을 놓아주려고요."

무슨 뜻일까.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무래도 이제 우리 센터에 그만 오시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녀가 말을 잇는다.

"제가 선생님 도움을 받아 꿈에서 남편을 만나고 나면 한동안 남편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고 힘들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문뜩 제가 계속 남편을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사는 것을 남편이 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맞는 말이었다.

이제 김연수 씨가 슬픈 과거에만 빠져 살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더불어 다음 방문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이 가볍다.

"아마도 그러실 겁니다. 김연수 님이 남편분을 그리워만 하고 사시는 걸 남편분도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직 젊으시고 곧 아이도 태어날 텐데, 좋은 분도 만나셔서 행복을 찾으시길 바라실 거예요."

선을 넘는 말은 아닐지 순간 고민했지만, 이미 그녀는 내게 손님 이상의 존재였다.

"어제 자면서 남편 꿈을 꾸었어요. 여기 센터의 도움 없이 남편이 꿈에 나온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남편이 꿈에서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정말 괜찮으니 저더러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꿈속에서 저도 남편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나 봐요. 그 말에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더라고요. 둘이 손잡고 한참을 울었네요.

그래서 오늘은 마지막으로 남편을 보러 왔어요. 인사하려고요. 나도 아이 열심히 키우면서 내 삶을 살아갈 테니 가끔씩은 꿈에서 얼굴 보여달라고, 오빠도 내가 없는 곳에서 행복하라고 말해 주려고요."

가슴이 먹먹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나도 그녀를 보낼 때가 된 것 같다.

"네, 이번에도 꼭 남편분 만나시고 잘 보내주시기 바래요. 저도 김연수 님이 앞으로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태어날 아이 함께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자, 그럼 이제 수면실로 가실까요? 오늘은 제가 직접 수면실까지 모실게요."

김연수 씨는 미동도 없이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김연수 씨가 계속 나를 바라본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눈에서 내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

울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한다. 내가 오늘 잠을 못 자서 그런지 김연수 씨의 얼굴이 미주의 얼굴로 보인다.

뭔가 이상하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

분명히 미주의 얼굴이다.

내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비명 같은 설움 섞인 울음만 나온다. 눈물이 터져 나온다.

"아, 아아. 아!"

어린아이가 울듯 울음소리가 커진다. 그리고 이내 통곡으로 변한다.

"미주야! 미주야!!"

짐승 같은 울음이 터지고서야 겨우 입술이 떼 진다.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그녀는 계속 내게서 멀어진다.

"미주야! 가지 마! 가지 마, 제발!"

내가 아무리 불러도 미주는 눈물을 흘린 채 미소를 지으며 멀어져 간다.

상담실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계속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점점 미주의 모습이 희미해진다. 계속 멀어진다.

그리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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