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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8. 2022

4개월 후

제이케이 장편소설

나는 회사에서 독립했다.

미연이랑 많은 대화를 했고, 처자식도 없는 자유로운 몸이니 도전을 택하기로 했다.

그날 꾸었던 창업의 꿈은 예지몽이 맞았던 셈이다.

미연이랑 그날 아침 같은 점심을 먹으면서 나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잘못하면 이 친구가 열심히 연구한 것을 빼앗겠다는 말이 될 수 있었고, 회사의 특허 같은 문제도 걸려있었기에 나도 현실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았다.

그냥 안되더라도 꼭 물어는 보고 싶었다. 나는 꼭 그래야 직성풀리는 스타일이다.

미연이는 역시나 내게 은인 같은 사람이었다. 역시나 잘 물어봤다.

드림 프로젝트가 하는 연구는 단지 꿈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은 아니고,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큰 목표의 선행 과정일 뿐이라고 했다. 당연히 향후 그런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려는 계획도 없다고 했다.

잠을 잘 자게 해주는 원리와 프로세스는 이미 소스가 공개되어 있고, 그걸 역으로만 활용하면 되니 기술적으로도 어렵지 않다며 자신이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다.

미연이가 말한 대로 회사는 내 독립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어렵지 않은 조건으로 회사가 보유한 특허를 무상으로 활용해도 좋다고 했다. 덕분에 내 독립에 필요한 시간이 대폭 단축됐다.

나는 그저 고객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G&S에 공유만 하면 된다.

오픈 소스이기는 했지만, 회사가 보유한 숙면 프로그램을 특허 침해 없이 새로 만들어 활용하려면 시간은 훨씬 더 걸렸을 것이다.

나는 이제 KJ드리밍 대표다. 내 이름의 두 글자를 땄다.

주 타깃은 처음 생각했던 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그리운 사람을 꿈에서라도 만나게 해주는 게 내 목표다.

잠을 자야 하는 사업인지라 7시 초저녁에 오픈하고 다음날 오전 11시에 닫는다. 낮밤에 바뀐 삶을 살고 있다.

개업한 지 한 달째.

처음 한 주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어서 괜히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나왔나 싶은 후회의 연속이었다. 극한 스트레스 덤이었다.

온갖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돌려받을 수도 없는 고정 투자비인 인테리어비에 광고비, 매월 나가는 사무실 월세와 공과금, 안내 직원 월급 등등.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회사의 테두리에 있을 때가 마음 편했다.

두 번째 주가 되자 손님이 조금씩 생겼다. 처음엔 뭐하는 곳이냐 묻고 그냥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뭔가 수면 클리닉, 최면 연구소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났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어떠랴. 이제 사람들이 우리 센터를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와 주시기만 한다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돈의 힘은 역시 위대하다.

광고는 신문사의 지면과 인터넷 포털에 나갔고, 원래 목적한 대로 사랑하는 잃은 사람들에게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는 콘셉트로 제작했다.

'그리운 사람, 꿈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광고 사이트에 광고주 모드로 접속해서 인터넷 광고 클릭수가 얼마나 됐는지 매일 체크하는 게 일이었다.

첫 손님은 의외로 누군가를 잃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응용했는지 짝사랑하는 누군가를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며 찾아온 30대 남자였다.

말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잠자기 전 상담을 해보니 그 짝사랑 상대랑 연애가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손님이 꿈을 꾸게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으나 손님이 원하는 꿈을 꾸게 하려면 적어도 10분 이상은 그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래야 선명하게 그 꿈을 꿀 수 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 자기가 원하는 걸 이야기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뇌 속에 기억이 강하게 남는다. 이른바 낯섦 효과다.

창업 전 온갖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테스트한 귀중한 결과값이다.

어쨌든 손님의 짝사랑 상대가 알면 기분이 좋을까 싶은 찜찜함은 있었으나, 첫 손님이기도 하고 꿈만 꾸게 해주는 거니 원래 창업 목적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자꾸 합리화를 하며 내 사업의 서비스 제공 범위는 넓어져 간다.

내게 특별했던 그 손님은 다음 날 아침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우리 센터를 떠났다. 숙면실에 아주 불쾌한 냄새를 남긴 채.

꿈속에서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마음을 받아줬나 보다. 아마 저 손님은 또 올 것이다. 그의 표정을 읽었다. 다음에는 적당히 돌려보내야 하나 고민이다.

첫 손님 이후로 우리 KJ드리밍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요즘은 고3 수험생들이 부모님 손에 이끌려 명문대에 가는 꿈을 꾸게 해달라고 오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동기부여 차원인 듯하다.

정작 대학은 학생들이 가고 도 학생들이 는데, 특정 대학, 과에 대해 꿈을 꾸게 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건 부모들이다. 그리고 밤새 꿈을 꾸고 하루 종일 잠 한숨 못 자 피곤한 건 아이들 몫이다.

그래도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을 해주신다. 아이들의 싫은 표정과 함께.

이런 수험생 부류는 확실하게 우리 회사의 고객군에 들어왔다. 꾸준히 찾아주신다.

최근에는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고시에 도전하는 수험생들, 취업준비생들이 자기 발로 찾아오는 사례가 늘었다.

보통 수험생 부류의 손님들은 주기적으로 슬럼프가 오거나 목표가 흔들릴 때 재방문을 해주시는데, 너무 잦은 빈도로 찾아오시면 그 꿈에 대한 간절함이 떨어진 상태인 데다 이미 경험이 있는 탓에 낯섦 효과도 떨어져 원하는 꿈의 빈도나 강도가 떨어진다.

나도 처음 방문해서 효과를 본 손님들이 재방문을 하실 때는 원하는 꿈을 꾸게 해 드리는 서비스는 최대 세 번까지 서비스가 가능하며, 네 번째부터는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다.

이런 권장사항을 듣지 않으시고 굳이 네 번째 방문을 하시는 부류들은 보통 불륜을 저지르고 싶은 사람, 바람을 피웠다가 파탄 난 전 가정을 그리워하는 사람 등등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을 바라거나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후회가 가득한 분들이었다.

굳이 안 된다는데도 네 번째로 찾아오시는 분들은 상담할 때 그냥 돌아가시는 걸 권유드리지만, 대부분은 그냥 주무 가시고 다음 날 여쭤보면 거의  원하는 를 얻지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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