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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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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케이 장편소설

오전 11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늦게까지 자고 지금 일어났다. 그런데 잠을 잔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미연이가 말한 그대로다.

새벽부터 기계가 꺼진 탓인지, 7시쯤 눈을 한 번 떴는데 그때부터 피로감이 엄청 느껴졌던 것 같다.

이마에 붙였던 센서들은 제거되어 있었다. 미연이가 와서 떼어주고 갔나 보다. 내가 자면서 내 중요부위에 손을 넣고 있었다던지, 흉측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잠깐 민망해하다가 다시 곧바로 기절한 것 같다.

그래. 나는 꿈을 꾸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내가 자면서 꾼 꿈이 전부 기억이 난다.
정확히 세 번의 꿈을 꾸었다.

한 번의 꿈을 꿀 때마다 연관성 있는 여러 개의 사건들이 연결되며 이어졌다. 각 꿈마다 시작과 끝이 딱딱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명확하게 시작되고 끝이 났다.

마치 연극의 막이 내리고 올라가는 것처럼 밝아지며 시작하고 어두워지며 끝이 났다. 아마 깊은 수면에서 얕은 수면으로 바뀔 때마다, 얕은 수면에서 깊은 수면으로 바뀔 때마다 꿈은 시작되고 끝이 났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꿈 이후에는 아무 기억이 없다.

첫 번째 꿈은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과 관련이 있었다.

평소에 술 한 번 먹자고 내게 말해온 옆 팀 과장님과 약속을 잡고, 밥을 먹으며 반주도 같이 하는 꿈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 그 과장님을 점심때 마주쳤는데, 업무 하다가 몇 번 도움을 받았는데도 밥 한 번 못 산 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꿈속에서는 그 과장님에게 마음의 빚을 털었는데, 현실에서는 아직 빚이 남은 상태니 마음이 무겁다. 빨리 술 한 번 사야겠다.

두 번째 꿈은 내가 자기 전까지 생각했던 전 와이프가 주인공이었다. 저번에 내게 무슨 말을 했던 상황을 계속 생각한 탓인지, 이번에도 상황은 조금 다를 뿐 내게 많은 말을 하는 상황이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만나는 사람은 없는지, 새로 다니는 회사는 어떤지 등 내가 그녀를 안 보고 산 기간만큼의 내 삶에 대해 물었다.

자기 마음대로 나를 떠났으면서 왜 내게 그런 걸 묻는지 되묻고 싶었지만, 꿈속에 나오는 나를 내 의지대로 컨트롤하는 것은 평소처럼 불가능했다.

꿈속에서 나는 아주 약간은 귀찮은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오랜만에 대화하는데 그래도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할 걸. 현실도 아닌데 그냥 미안해진다.

그녀는 마지막 즈음에 미연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미연이도 아직 싱글인데, 그 친구랑 잘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끝으로 그녀는 내 꿈속에서 사라졌다.

저번에 꾸었던 꿈에서 뭔가 내게 암시하듯 한 말이 이 말이었던 것 같다.

"에이. 말도 안 되지."

입 밖으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김미연이라는 여자는 내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이성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결혼 전에는 내가 전 처와 연애를 하고 있었고, 혼자가 된 후에는 미연이가 너무 좋은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랬다.

아직 결혼도 한 번 안 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안 될 말이다. 내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었어도 성품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이건 아니다.

전 아내가 사라지자 곧바로 미연이가 꿈에 등장했다. 미연이를 매개로 앞의 꿈과 이어지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왔다. 미연이와는 서론도 없이 곧바로 육체적 사랑을 하려는 상황이었다.

옷을 벗거나 하는 야한 장면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여느 연인처럼 서로에게 애틋한 눈빛을 보내며 서로를 탐닉했다. 꿈 내용을 생각하니 내 중요 부위에 반응이 온다.

'음란마귀가 씌었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미연이가 내 꿈속에서 이런 봉변을 당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숙면실에서 잠깐 단둘이 있었던 상황이 내 가슴속에, 기억 속에 임팩트 있게 남았었나 보다.

그리고 직전의 꿈속에서 전처가 미연이에 대해 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다.

하지만 전 처가 꿈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왜 미연이랑 사랑을 했는지 그 자체는 미스터리지만 모든 건 내 무의식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과학적인 이유일 것이다.

내가 평소에 미연이를 많이 의지하다 보니, 내 뇌가 오해했던 것으로 정리한다.

그나저나 미연이가 새벽에 왔을 때 그런 꿈을 꾼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만약 그랬다면 미연이에게 흉측한 모습을 보였을 테지만, 아닐 거라 믿어야 마음이 편하다.

뭐, 그랬어도 어쩌겠냐는 마음이다. 미연이도 성인인데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난 그저 아직 건강한 것뿐이다. 나이가 들면 뻔뻔해진다.

세 번째 꿈은 생뚱맞다.

내가 창업을 했다. 지금 회사생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웬 창업이란 말인가.

조직생활이 힘든 건 맞고, 평소에 요즘 많이 나오는 스타트업 관련 사를 자주 접하기도 했지만 창업은 갑작스럽다.

꿈속에서는 정확한 창업 아이템이 나오진 않았지만, 내가 하던 일과 관련된 것으로 창업을 했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내가 꿈속에서 한 창업이 성공까지 이어졌는지는 보여지지 않았다. 창업을 하며 회사에서 독립하고 내가 기뻐하며 꿈은 끝이 났다.

창업하는 과정에서도 미연이가 등장했다. 꿈속에서 미연이는 내가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내 독립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꿈속에서조차 미연이한테 도움을 받다니. 꿈에서만큼은 내가 도움을 주면 안 되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창업을 하는 꿈이 마치 예지몽처럼 느껴졌다. 뭔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무엇을 가지고 창업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숙면 아이템은 너무 사업영역이 회사랑 똑같아 불가능할 것 같고, 오늘 내가 경험한 것을 남들에게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좋은 사업 아이템 같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하고만 문제가 없다면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개꿈이라고 무시해도 될 것을 왜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왔다는 진동이 울린다.

미연이다.

'오빠, 꿈 잘 꿨어? 이제 곧 숙면실 비워줘야 할 시간인데, 일어났으면 아점 먹으러 가자. 나도 이제 퇴근 가능!'

'잘 잤어?'가 아니라 '꿈 잘 꿨어?'라는 인사가 생소하다.

그래 난 꿈을 잘 꾸었다. 신기하기도 해라. 생생하게 다 기억난다.

역시 이것만 한 아이템이 없다. 확실한 효과를 내가 경험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뭔가 로또라도 된 것처럼 가슴이 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꿈에서라도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면, 그야말로 대박을 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온갖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아차, 미연이."

창업에 정신이 팔려서 미연이한테 답 하는 걸 잊어버렸다.

미연이는 아마도 내가 깰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일어나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걸 알고 배려했을 것이다. 아마 미연이는 그랬을 것이다.

그런 착한 애한테 음란마귀나 씌어서 요상한 꿈이나 꾸어댔으니 미안해 죽을 지경이다.

'금방 세수만 하고 나갈게'

답을 하고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꼭 밥은 맛있는 걸로 내가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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