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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9. 2022

손님 김연수

제이케이 장편소설

"김연수 님 상담실로 들어가세요."

안내 직원의 목소리에 30대 초중반처럼 보이는 한 여자분이 상담실로 들어오셨다.

마른 체형인데 배가 살짝 나온 모습이 마치 임산부 같았다. 창백하고 표정 없는 얼굴. 딱 봐도 사연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자, 어떤 꿈을 꾸고 싶으셔서 오셨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돈벌이를 위해 말을 거는 것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얼마 전 사별한 남편을 보고 싶어서 왔어요. 여기 오면 만날 수 있다고 해서요."

남편을 잃은 여자라니. 거기에 뱃속에 아이까지 있다. 단지 어떤 꿈을 꾸고 싶냐 물었을 뿐인데, 마치 내 친동생이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것처럼 속상하다.

애초에 우리 센터의 개업 목적이 이런 분들을 위한 것임을 고려해도 임산부는 예상 밖이다.

반드시 남편분을 만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과 이 꿈을 꾸는 과정이 뱃속의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걱정뿐이다.

꿈은 인간이 매일 꾸는 것이고 그중에 악몽도 있으니 아이한테 의학적인 해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에 내심 안심이 된다. 오히려 아빠를 보고 엄마가 기뻐하면 태교에 좋을 수도 있다는 자기 합리화의 힘을 빌린다.

오늘은 상담의 압박이 심하다.

원래부터 생각하던 고객군이었는데, 막상 깊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을 마주하며 돈을 벌려니 남의 슬픔을 이용하는 것만 같아 여간 마음이 불편하다.

"아, 네. 가능합니다. 10분 정도 저랑 간단히 이야기를 좀 나누시고 숙면실에 가셔서 편안하게 주무시면 됩니다."

사연이 사연인지라 모든 게 조심스럽다.

"저희 남편은 제 첫사랑이었어요. 대학교 때 처음 만나서 오래 연애했어요."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대학 때부터 만나셔서 결혼까지 하시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그녀의 무의식 속에 그 남편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남편을 떠올릴만한 리액션과 질문을 했다.

그러는 한편 그녀의 아픔을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게 질문을 했다.

"네, 정말 오래 사랑했는데, 정작 결혼생활은 짧게 하고 가버렸네요. 뱃속에 아이도 있는데, 아이도 저도 너무 남편이 보고 싶어서 찾아오게 됐어요."

어떤 말이든 해야 했다. 아직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빌어 남편이 보고 싶다고 하는 말에 이 여자분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그리움이 사무쳤는지 느낄 수 있었다.

"네, 꼭 만나셔서 그리움이 좀 덜해졌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꿈속에서 남편분과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그런 것도 제가 정할 수가 있나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랑 나누는 대화들이 김연수 님 머릿속 깊은 곳에 남아 오늘 꿈으로 나타나 줄 겁니다."

"그러면 처음 만나 제가 좋아하게 된 순간이 꿈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제 곁에 없지만, 단 한 번도 그때 남편을 만난 걸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고 더 적극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상담을 진행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10분이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잠자고 있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네, 이제 상담은 이 정도면 될 것 같고요. 주무시기 전까지 힘드실 수도 있겠지만, 남편분과 처음 만나셨을 때의 상황들과 그때의 감정 같은 것도 기억나는 게 있으시면 떠올려 보시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남편이 많이 생각나셨는지, 여자분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게 보였다. 빨리 남편분을 만나게 해드리고 싶다.

"마음 편안하게 가지시고 옆에 숙면실로 가시면 됩니다. 저희 직원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주무실 때 이마 가운데에 센서 하나 부착할 건데, 그건 김연수 님 수면 중의 뇌파를 측정하는 센서이니 조금 불편해도 이해해 주세요.

그럼 가셔서 편히 주무세요. 좋은 꿈 꾸시고요."

김연수 씨는 한 손을 배 위에 살며시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상담실로 들어올 때 두 손으로 들고 왔던 작은 가방을 들고 상담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뱃속의 아이와 손을 잡고 아빠를 보러 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의 뒷모습에서 이렇게까지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며칠이 지났다.


김연수 씨가 다녀가신 뒤 며칠 동안은 나도 마음이 힘들었다. 나라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진 그녀에게 갖는 깊은 공감에서 오는 후유증일 것이다.

그 후유증이 막 가실 때쯤, 그녀가 또 우리 센터에 찾아다.

"김연수 님 상담실로 들어가세요."

안내 직원의 말에 온 감각이 곤두섰다.

"또 오셨네요."

이 분이 다녀가시면 내가 또 얼마 동안 힘들 것을 알기에 마냥 반길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 드리고 싶은 손님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배가 더 부른 것처럼 보인다. 아이가 더 커진 모양이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났는데 다시 찾아오신 것을 보니 남편분에 대한 그리움도 더 커진 모양이다.

"네, 지난번에 상담을 잘해주셔서 그런지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로 돌아가 잘 만나고 왔어요."

꿈속에서 같은 선택을 하고 결혼까지 하셨는지 궁금해졌다.

"남편분과 행복하게 연애도 하시고 결혼도 하셨나요?"

제발 그랬기를 바랐다.

"아니요. 남편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제가 고백을 했는데, 남편이 절대 저랑 만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꿈꾸는 내내 남편 쫓아다니다가 깼어요."

김연수 씨는 부끄러운지 옅은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 미소조차 슬프게 느껴졌다. 위로를 꼭 해주고 싶었다.

"꿈은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서 생각하던 것들이 현실의 경험과 맞닿으며 변형되기도 하지만, 꼭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만 꿈에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남편분이 김연수 씨를 혼자 두고 가신 게 너무 미안하셔서 꿈속으로 찾아와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닐까요. 아내분만큼은 반드시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과학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해주는 일을 하는 내가 무당이 할 법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나도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 노력이 가상했는지 그녀는 나를 보고 활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조금 섭섭했지만, 그렇게라도 만날 수 있어서 좋어요. 쫓아다니면서도 계속 사랑한다고 제 마음을 표현했으니 크게 보면 처음 제가 원했던 상황이기도 하고요."

"네, 그래도 만나셨다니 다행입니다. 자, 오늘은 어떤 꿈을 꾸고 싶으셔서 오셨을까요?"

나는 활짝 웃으며 물었다. 오늘만큼은 그녀랑 그녀의 남편이 행복한 순간을 꿈에서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오늘은 남편이랑 제가 우리 아이 임신을 확인하고서는 가장 행복해했던 순간을 보고 싶어요.

남편이 평생 동안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었거든요. 우리 아이도 있는데 이번에는 절 밀어내진 않겠죠."

옅은 미소와 함께 뱉어진 그녀의 마지막 말이 내 마음을 또 아프게 한다.

우리는 또 시시콜콜하게 그녀에게 슬픔이 찾아오기 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천천히 공유했다.

"자, 이제 남편분을 만나러 가볼까요?"

오늘은 꼭 남편분과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빌며 그녀를 숙면실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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