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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8. 2022

꿈을 꾸게 해 드림

제이케이 장편소설

이틀이 지나 금요일 오전이다.


오늘 혹시 몰라 회사에서 잘 준비를 하고 왔다. 평일에는 그래도 회사에서 직원 숙면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금요일은 거의 없다.

미연이의 말이 아직 긴가민가 하지만 오늘 커피나 한잔 하면서 정확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오후 3시쯤 1층 커피숍으로 미연이를 불렀다.

"오빠, 잘 준비 다 하고 왔어?"

미연이다운 첫인사다. 단도직입적이다.

"어? 어. 준비는 해왔는데, 나 때문에 너 오늘 집에 못 들어가는 거 아니냐?"

괜히 피 같은 불금을 나 때문에 날리는 것 같아 미안함이 앞선다.

"아니야. 어차피 연구 때문에 야근 각이었어."

나 미안하지 말라고 하는 말인 걸 안다. 미안해서 곧이곧대로 미연이의 말을 믿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꿈을 꾸게 하는 게 가능해? 그것도 내가 기억도 못하는 꿈을?"

"우리 드림팀 역량 한 번 믿어봐. 그런데 아직 공식적으로 개발 완료를 한 건 아니니까 이거 했다고 어디 가서 말하지는 말고."

뭔가 비밀로 하려니 더 긴장이 된다.

"오빠가 궁금할 것 같아서 잠깐 원리에 대해 설명해 줄게.

렘수면 때 잠에서 안 깨게 하는 프로세스를 역으로 적용해서 렘수면 상태 때 꾸는 꿈들을 모조리 기억나도록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의 자극만 주어 뇌를 깨우고 그걸 기억하게 하는 원리야."

이런 게 바로 역발상이라는 거구나 싶으면서 역시 똑똑한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잠에서 깨지 않는 수준의 외부 자극을 주는 방법 찾는 게 좀 오래 걸렸는데, 내부적으로 테스트까지 완료한 상태야."

"부작용 같은 건 없겠지?"

막상 하려니 조금 두려워진다.

"피곤할 거야. 보통 사람이 자면서 렘수면을 보통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 겪는데, 그때 꾸는 꿈을 전부 다 기억하게 될 테니까. 새벽 적당한 시간에 기기들 전부 끌 테니 늦게까지 푹 자고 나와."

"고맙다."

나 때문에 미연이가 뭔가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원하는 꿈은 어떻게 해야 꿀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오늘 직접 경험해 보고난 후에 물어볼 생각이다.

"근데 오빠, 오빠가 원하는 꿈을 꾸려면, 꾸고 싶은 꿈이 머릿속에 임팩트 있게 남아 있어야 하니까 잠들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해 둬.

그래야 그 생각들이 무의식 중에 기억 안나는 그 꿈 내용까지 연결시켜서 또 꿈에 나올 수 있으니까."

미연이는 마지막까지 내가 궁금해할 법한 것들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미연이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 시간이 되었다. 미연이는 9시에 숙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같이 저녁이라도 할까 했는데, 연구 때문에 간단히만 먹는다고 해서 지난번에 만났던 대학 동창을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같은 꿈을 꾸기 위한 내 작은 노력이었다.

드디어 9시.

회사로 다시 들어가 숙면실로 향했다. 술을 조금 마셔서 약간 취기가 올랐다.

취기 덕분에 꿈꾸는 게 잘 안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나 혼자만 잘 수 있는 1인 숙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연이가 기다리고 있다.

"오빠 왔어?"

"어어, 바쁜데 민폐 아닌가 모르겠네. 많이 기다렸니?"

미연이한테 미안한 마음에 사 온 쿠키세트를 건넸다.

"에이, 뭐 이런 걸 다 사 왔어. 야근하다 잠깐 커피 한 잔 할 겸 올라온 건데 무슨 민폐야. 잘 먹을게, 오빠."

순간 내가 술을 먹고 온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걱정됐다.

"미연아, 내가 저녁에 반주를 했는데 술 먹은 건 괜찮니?"

"응. 과음해서 아예 못 깨어나는 상태가 아니면 괜찮을 것 같아. 오빠 뇌파 분석하면서 렘수면 상태가 되면 주변기기들이 알아서 적당한 강도로 자극해  테니까."

다행이다.

"오빠, 몇 번 여기서 자봐서 알겠지만 자기 전에 씻고 누워서 여기 있는 뇌파 센서 이마 가운데에 붙이는 것까지는 똑같은데, 이 파란색 선 있지? 이거  붙이고 자면 돼."

잠을 잘 자게 해주는 것과는 다르게 꿈을 꾸게 해주는 건 센서가 하나가 더 필요한가 보다.

괜히 바쁜 애 붙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건 이미 민폐인 상황에서 더 민폐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선은 뭐냐는 질문은 하지 않기로 한다.

늦은 밤 좁은 방 안에 이성과 단둘이 있는 게 매우 어색하게 느껴져 미연이를 빨리 보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10년 넘게 알고 지내도 내가 미연이를 여자로 느끼기는 하는가 보다. 단둘이 있으면 그래도 어쩔 줄 모르겠는 순간이 온다.  

미연이는 내게 대략적인 방법만 알려주고 바로 방을 나갔다. 그녀의 빠른 발걸음은 마치 내가 오래 미연이를 붙잡아 둔 게 맞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이 황금 같은 금요일 밤을 회사에서 보내다니 억울한 마음이 밀려온다. 하금세 내가 자초한 일임을 자각하고 씻으러 갔다.

수면을 위한 이 시설이 최고급 호텔은 아니더라도 비즈니스호텔 급 정도는 되는 것 같아 그래도 위안이 된다.

잘 구비된 샴푸와 바디워시로 하루 종일 받은 스트레스를 씻어낸다.

굳이 그 꿈을 다시 꾸어야만 하는지 자문해 보지만 이미 늦은 터, 빨리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의식적으로 한 가지 생각을 계속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잠 안 자고 유튜브 영상이나 기사를 봤다가는 괜히 이상한 꿈들이나 잔뜩 나올 것만 같았다.

두 개의 선을 내 에 붙였다.

하나 붙일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두 개를 붙이니 예전에 티브이에서 보던 수면센터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단 두 가닥이지만 주렁주렁 뭔가 머리에 달려있는 게 영 흉측하다. 로봇 같기도 하고, 환자 같기도 하고.

숙면을 위한 공간이라 외부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아 고요하다. 그리고 불을 끄면 칠흑같이 어두워지겠지.

이제 정말 자리에 누울 시간이다.
자리에 눕는다. 눈을 감는다. 한숨을 크게 쉬어본다. 술기운이 돈다. 이제 정말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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