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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8. 2022

제이케이 장편소설

늘 꿈을 꾸었다.


꿈을 꾼 것 자체가 오랜만인데, 출근을 위해 꼭 눈을 떠야 하는 시간에 5분이 못 미쳐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잠들고 싶은데 남은 시간 너무 짧아 야속다.

꿈 내용을 곱씹어본다. 전 아내가 나왔다. 가장 행복했던 신혼 초 때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꿈속에서 그녀가 내게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았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지몽처럼 뭔가 암시를 해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제 근처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를 만나 한 잔 했더니 대학교 다닐 때가 무의식 중에 생각이 많이  보다. 그 시절과 뗄 수 없는 그 사람이 꿈에 다 나온 걸 보니.

마음이 영 이상하다. 싱숭생숭. 미연이랑 따로 을 먹고 싶어 진다.

항상 마음이 울적할 때는 미연이를 찾게 된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내온 만큼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내가 위로를 받고 싶거나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때 쏟아야 하는 노력이 적다.


별말 없이 밥만 먹어도 위로가 되고, 깊은 이야기를 일부러 꺼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깊은 이야기가 나오는 그런 친구.

그리고 물리적으로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니 따로 시간을 낼 필요도 없고, 밥이나 먹자고 하기에도 미연이가 가능한지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으니 여러모로 편하다.

사실 무엇보다 꿈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미연이랑 이야기 나누며 오늘 내가 꾼 꿈에 대해 실마리라도 찾아보고 싶었던 게 컸다.

역시나 내가 원했던 대로 미연이가 점심시간을 내게 내어주었다. 미연이는 내가 부탁하는 걸 거절하는 법이 없다.

"미연아, 오늘 내가 꿈을 꾸었는데 무슨 꿈을 꿨는지 생각이 안 나네. 꿈꾸었더니 피곤하기만 하고 뭔 내용인지는 모르겠고. 답답하게."

가볍게 밥을 먹자고 해놓고 만나자마자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대충 분위기 같은 것도 생각 안 나고?"

뭔가 전 아내에 대한 꿈이라고 하면 내 기분이 더 우울해질까 봐, 그리고 미연이에게도 내 우울한 기분을 물들일까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안 하기로 한다.

"그냥 대학 졸업하고 첫 회사 열심히 다닐 때였던 것 같아"

그냥 대충 비슷한 시기로 얼버무렸다.

"평범한 꿈같은데, 뭐가 그리 궁금해서 답답하기까지 해. 조상님 나오셔서 로또 번호라도 불러주신 것도 아니고."

뭔가 정곡을 찔린 것만 같다. 내가 얼버무린 말에 미연이가 눈치챌까 조마조마하다. 그러면서도 미연이는 다 눈치챘으면서 나를 위해 속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자주 꿈을 꾸는데, 보통은 기억이 잘 안 나고 흐릿하게만 남아서 매번 아침마다 찝찝하고 신경 쓰여. 오늘 진짜 오랜만에 꿈을 꿨는데, 또 생각 안 나고 그러니까 더 그러네."

내 생각이 읽히는 것 같아 재빨리 말을 돌렸다.

"오빠, 사람은 매일 꿈꾸는 거 알아?"

미연이가 의외의 말을 꺼낸다.

"진짜? 그럼 나만 매일 안 꾸는 거야?"

미연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럼 내가 꿈꾸지 않았다고 느끼는 날들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오빠만 매일 꿈을 안 꾸는 게 아니고, 사람은 매일매일 자면서 꿈을 꾸는데, 그걸 기억하면 다음 날 꿈꿨다고 느끼는 거고, 기억 안 나면 꿈을 안 꿨다고 느끼는 것뿐이야."

숙면을 연구하는 회사 3개월이나 다녔는데 나는 왜 이런 걸 몰랐는지 갑자기 창피해진다.

"꿈은 왜 매일 꾸는데?"

이왕 창피한 거 모든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한다.
 
"오빠, 하루에 있었던 일들 며칠 지나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

"요즘은 나이 들어 그런가 이틀 지나면 대부분 까먹는 거 같아."

"그렇지? 그런데 나이 때문은 아니야. 뇌는 있잖아, 사람이 평소에 활동하면서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사건을 전부 오래 기억하지는 못해서 그걸 오래 기억할 것과 아닌 것을 먼저 판단해.

그래서 오래 기억할만한 특별한 일들은 따로 정리해서 뇌에 저장을 해 두지"

"그래서? 그거랑 꿈이랑 관련이 있는 거야?"

미연이의 설명이 마치 흥미진진한 과학 수업시간 같다.

"보통 그 판단을 하는 작업이 우리가 자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데, 우리가 얕은 잠을 자는 동안 실제로 잠에서 깨어나지는 않더라도 뇌가 각성 하루동안 겪은 일들을 정리하는 과정을 인지하게 되면, 아침에 깨어나서 그 부분 부분을 기억하고 꿈꿨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질문이 많아지려고 하는데 미연이가 말을 잇는다.

"우리가 렘수면 때 잠에서 깨지 않게 주변기기들을 컨트롤하는 연구를 하잖아. 물리적으로 편안함을 유지시켜 잠에서 깨는 걸 막으려는 것도 있지만, 꿈을 꾸 있는 순간을 기억하는 자체가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막으려는 목적이 더 컸었어."

꿈을 기억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쓰이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꿈꾸면서 에너지를 얼마나 쓰길래 자고 나면 피곤을 느낄 정도가 되는 거야?"


미연이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한다.


"인간의 뇌는 전체 몸무게에 2% 밖에 안되는데, 에너지 사용량은 전체 사용량의 20%씩이나 차지하거든. 하루 종일 뇌는 활동을 하는데, 밤에 잠시 쉬는 타이밍에도 꿈꾸는 과정을 기억해야 하니 평소 보다도 에너지 소모량이 많지."

왜 사람이 매일 꿈을 꾸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지만, 또 하나의 의문이 남았다.

"그러면, 예지몽이나 기괴한 악몽 같은 거, 조상이 꿈에 나와서 로또 번호 불러주는 꿈 꾸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거야? "

질문을 계속하다 보니 마치 미연이한테 따지듯 묻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침 주문한 칼국수가 나왔다.

"우선 밥부터 먹자. 자꾸 질문만 해서 미안."

밥을 먹으며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요즘 연구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드림 프로젝트는 무엇을 뜻하는지 등이다.

대학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미연이 대화를 하면서 나한테 뭔가 숨기거나 한다는 느낌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미연이가 맡은 일만큼은 내게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놓지 않았다. 그냥 꿈에 대해 연구한다고 했다. 마음이 불편해 보였다.

내게 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겠지 싶어 미연이에게 더 이상 묻지 않으려 하던 차에 미연이가 자신은 꿈을 꾸게 하는 연구를 한다며, 자세한 것은 사내 보안서약 때문에 더 말할 수 없다 상당히 미안해했다.

"꿈을 꾸게 해?"

마음에서 나온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더 물어봐봤자 미연이만 더 난처해질 것 같아 다른 질문으로 급히 말을 돌렸다.

우리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미연이의 소개팅 이야기와 얼마 전 새로 생긴 나의 취미 이야기로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갔다.

내 마지막 궁금증에 대해 답변을 들은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들고 회사 근처를 산책하며 남은 점심시간을 채우던 때였다.

"오빠, 아까 예지몽이나 비현실적인 꿈, 조상님 꿈같은 거 물어봤었지?"

역시 미연이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는 배려심 많은 친구다.

"응, 그런 꿈들은 그날 경험한 사건이 아닌 것 같아서."

"막 하늘을 날거나 비현실적인 꿈은 그날 겪은 일 중 의미 있는 일만 잘라내는 과정에서 잘라 조각과 그동안 무의식 중에 있던 생각이나 불안 또는 그동안 머릿속에 있던 기억 조각들이 연결되면서 비정형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거야."

미연이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날 있었던 일과 직접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결고리를 찾다 보면 결국은 뭔가 본인이 가지고 있던 기억과 맞닿은 부분이 있지."

조금 어렵지만 미연이의 자세한 설명 덕분에 대충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이 기다려진다.

"그런데, 태몽이나 예지몽, 조상님 로또 꿈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야. 일부 과학계에서는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이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나는 세상에 이런 비과학적인 뭔가가 있다고 믿거든.

특히 꿈에 죽은 사람이 나타나서 뭔가 메시지를 전하는 거. 난 그거 영혼이 찾아온 거라 믿어."

'미연이에게 종교가 있었나?'


똑똑하고 매사에 이성적인 미연이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모르는 것은 어떻게든 알고야 마는 성격인데 답을 못 찾고 모른다는 대답을 한 것도, 미신이나 귀신 같이 비과학적인 것은 안 믿을 것만 같은 애가 예지몽, 조상신 같은 것을 믿는다는 것도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다 끝나가자 우리는 다시 연구소가 있는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층에서 일하는 미연이에게 오늘 이것저것 귀찮은 질문을 한 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려던 찰나였다.

"오빠, 오늘 꾸었는데 기억 다는그 꿈. 다시 꾸고 싶으면 금요일에 숙면실에서 자고 가. 내가 그 꿈 다시 한 번 꾸게 해 줄게."

미연이가 이상한 말을 한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꿈을 어떻게 꾸게 해 주는지 묻고 싶었으나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이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더 말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어? 어! 다시 연락할게!"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으면서 긴가민가 하다. 나중에 통화나 한 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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