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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8. 2022

공대생 이기정

제이케이 장편소설

한 번의 실패를 딛고 소위 '계과'라 불리는 기계공학과에 입학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인생에 몇 번 있는 큰 도전에서 꼭 한 번은 크게 실패하는 게 내 운명인가 싶다는 생각도 든다.

치열하게 재수의 시간을 견뎌온 것과는 다르게 내 대학생활은 그렇게 치열하지만은 않았다.

졸업하는 선배들을 봐도 직장이 창원, 울산 등 산업단지가 몰려있는 지방에 있을지언정 대부분 이름을 들어본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4학년 때 입사원서를 넣으며 깨달은 사실은 대기업에 간 사람 숫자만큼 취업 자체를 하지 못한 사람과 중소기업에 취업한 사람도 많았다는 것, 그리고 대기업에 간 사람들은 평소에도 치열하게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는 이었다.

남들 3년 하는 고등학교 공부를 4년씩이나 하고, 남들 2년 가는 군대를 괜히 휴가라도 자주 나와 보겠다고 해군에 지원해 2개월을 더 했다는 보상심리로 입학 후, 제대 후 그저 열심히 놀기만 했다.

열심히 놀았더니 3학년 2학기까지 내게 매겨진 학점은 평균 평점 2.5에 토익점수는 700점도 못 넘겼고, 심지어 가지고 있던 자격증도 초등학생들도 쉽게 딴다는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 하나뿐이었다.

그마저도 취업 준비를 위한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군대에서 휴가 한 번 더 나와 보겠다고 취득한 것이다.

열심히 놀기만 하다가 4학년 2학기가 되 이러다가 취업도 재수를 해야 할 것만 같아 교내 취업 스터디에 들어갔다.

교내 스터디인 만큼 멤버들이 전부 우리 학교 사람이었고, 우리 과 동기인 여학생도 한 명 있었다. 기계과 입학 인원이 200명이 넘었기에 잘 알지는 못했지만 얼굴은 알던 동기, 첫인상이 꼭 새하얗고 귀여운 얼굴에 공대 남자들 꽤나 울릴 것 같았던 그 동기. 내 전 아내였다.

취업을 목표로, 아니 취업을 핑계로 우리는 매주 거의 매일 만났고, 전공이 같다 보니 지원하는 회사나 지원분야가 같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항상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그리고 한 살 어린 동기지만 누나처럼 사소한 것 하나하나 나를 챙겨주는 모습에 고마움이 호감으로, 호감이 사랑으로 그렇게 우린 동기에서 연인이 됐다.

연애를 한 것인지 스터디를 한 것인지, 취업을 위한 스터디인지 연애를 위한 스터디인지 모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미연이도 우리 스터디에 들어왔다.

미연이는 전 아내의 친한 친구였고 우리 기계과였다. 들어보니 전 아내가 미연이를 스터디에 들어오라고 추천해 준 것 같았다.

취업의 폭이 넓고 여자가 소속되기에 조금 더 부드러운 분위기의 전자전기공학과에서 우리 과로 전과해 온 특이한 이력을 가진 친구.

나 군대 가 있을 동안 내 전 아내나 미연이 졸업 안 하고 뭐 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같이 친하게 지내보니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공대생이었음에도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등 기업에서 좋아하는 스펙을 열심히 쌓아놓은 성실한 친구들이었다.

특히 미연이는 굳이 스터디 같은 도움 없이 당장 내일 아무 회사나 면접을 봐도 붙을 것 같은 친구였지만, 취업준비생의 불안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미연이의 그런 모습은 지금만 열심히 살고 있는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물론 나만 그동안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던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우리 기계과 3인방은 매일 함께 모여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렸다. 스터디 정기 모임 이외에도 매일 따로 모여 지원하는 회사에 대한 공부와 인적성 시험 준비 등을 했다.

슬럼프라도 오면 술 한잔 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끌어주고, 누구 하나 취업전형 중 하나라도 붙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진심이었다.

넣는 서류마다 광속 탈락, 소위 '광탈'을 수 없이 경험하고, 운 좋게 서류전형을 통과해도 아이큐 테스트하듯 지원자를 자기 회사에 맞는지 평가하는 인적성 전형에, 집단면접, 토론면접, 임원면접까지 내가 한 개의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들은 너무 많고 복잡했다.

이제 진짜 취업도 재수를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이 필요했던 2학기 중반이 넘어가면서 주변에서 결과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스터디원이 우리 셋을 포함해 여섯 명이었는데, 가장 먼저 취업이 확정된 친구는 단연 김미연이었다. 미연이는 바로 지금의 내 회사인 G&S 수면연구소에 가장 먼저 합격을 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복지가 좋고 연봉이 대기업 못지않게 좋으며, 근무강도도 연구원 치고 강하지 않다고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연구소가 서울 강남에 있어서 대기업 네임 밸류를 따지지 않거나, 서울에서 꼭 장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회사였다.

가장 먼저 취업이 된 만큼 입사 전까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며 대학생활 마지막을 불태울 수도 있었으나, 미연이는 나와 전 아내가 면접이라도 보게 되면 그 기업과 관련된 신문기사도 찾아주며 우리의 취업을 위해 마지막까지 애써주었다.

남은 우리는 취업 공고가 뜨는 족족 수업도 빼먹고 최선을 다해 자기소개사와 입사원서를 생산해 냈다. 하루에 두, 세 개만 써도 몸이 만신창이처럼 힘들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취업준비생 생활은 진짜 취업재수를 고민해야 하는 4학년 2학기 기말고사 직전에서야 끝났다.

전 아내는 그래도 이름만 들으면 아는 중견기업으로, 나는 이름만 들으면 안 되고 부연설명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내실 있는 회사에 합격했다.

우리 셋은 누구 하나 이 취업 레이스에서 낙오하지 않고 최선의 결과를 낸 것에 만족했다.

나는 전 아내보다 객관적으로 떨어지는 회사에 취업한 탓에 혹시라도 그녀를 잃을까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 둘은 끝까지 사랑을 지켜냈고 우여곡절 끝에 취업 후 4년 뒤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미연이 우리 결혼 준비하는 과정에 맞닥뜨린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게끔 가교 역할을 하며, 우리 사랑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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