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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8. 2022

G&S 수면 연구소

제이케이 장편소설

나는 인간이 하루에 3분의 1의 시간을 보내는 '잠'을 연구하는 회사에서 일한다.


우리 연구소는 쉽게 말해 수면장애를 경험하고 계시는 분들의 수면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상황에 따른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하여 잠을 푹 주무시게끔 하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가끔 티브이에서 사람의 머리에 뇌파를 측정하는 장치를 붙이는 장면이나 온몸에 센서를 주렁주렁 달고 자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런 것과 비슷하지만 분석이 아닌 좋은 수면 자체가 목적이므로 훨씬 더 간단하다.


티브이에서 보는 장면처럼 온갖 센서를 붙이면 불편해서 잠을 도대체 어떻게 자는지 아직도 나는 이해가 안 되지만, 다행히 우리 회사는 수면 중의 뇌파를 읽는 센서 하나만 사용한다.


나도 몇 번 이곳에서 잠을 자 보았는데, 자는 동안 그 센서를 부착한 것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던 것 같다.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평소에 자주 꾸던 꿈도 잘 안 꾸고 숙면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잠을 잘 자게 해 준다는 회사 광고가 과장은 아닌 듯하다.


여기서 잠을 자면 잠은 잘 잘 수 있는 것 같은데, 하루 종일 머물던 회사에서 잠까지 자는 것은 심적으로 아주 내키지 않아 가끔씩 숙면이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직원들이 이용할 때는 뭔가 회사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더 수집하는 것 같아 꺼려지기도 한다. 밤새 내 몸을 제공하고 야근수당도 없이 회사를 위해 실험대상이 되어주는 느낌이랄까?


잘 때 아주 조금 신경 쓰이는 그 뇌파 측정 센서 한 줄 내 머리에 달아주는 게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어쨌든 나 자신을 아주 조금이라도 희생해서 이롭게 하기는 싫지만, 인간의 편안한 잠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는 이 회사는 내 인생의 두 번째 회사다.


신입사원으로 시작한 내 첫 회사는 내가 결혼한 지 1년 만에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그만두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한 지 5년 만이었다.


퇴사 후 2년여의 방황 끝에 대학 동기 미연의 적극적인 권유와 도움으로 이 회사에 입사했다.


졸업 후에도 간간이 연락하고 지내던 미연이는 백수로 피폐하게 살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퇴직금을 까먹고 사는 내 모습이 여간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벌써 세 달이 다 되어간다. 이 회사에 입사한 지, 그리고 내 아픔이 그나마 괜찮아지게 되기까지. 미연이 덕분에 바쁘게 지내서인지 그래도 요즘 사람답게 지내고 있다.


밥은 최소 하루 두 끼, 술은 일주일에 2번 이내, 월급 받으면 최소 20%는 적금 넣기, 한 달에 한 번은 등산 가기, 회사 열심히 다니기 등등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는 걸 느낀 지난 몇 년이다.


이 회사에서의 내 역할은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물리적으로 컨트롤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 구체적으로 온도, 습도, 매트리스 각도, 딱딱한 정도 등을 실시간 수면 상태에 따라 조절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다.


입사한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아직도 왜 그런지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은 잠을 자며 수차례 깊은 잠과 얕은 잠을 반복한다고 한다.


깊은 잠을 잘 때는 누가 깨워도 잘 깨지 않게 되지만, 얕은 잠을 잘 때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잠에서 깨게 되고 이는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는 렘수면이라 부르는 얕은 잠 상태 때 최대한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수면 환경에 변화를 주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막는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는 주로 매트리스의 기계적인 컨트롤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이 매트리스 팀에는 나를 포함한 열세 명의 연구 인력이 있다.


미연도 최근까지 이 팀에 있었지만, 얼마 전에 드림 프로젝트라는 태스크포스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매트리스 컨트롤 기술은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으나 온도나 습도와는 다르게 개인이 느끼는 편안함과 자극이 천차만별이라 최적의 수치를 도출해내는 것부터가 매우 어렵다.


우리 팀이 이 회사 연구조직의 핵심이라는 뜻이고, 이 팀에 중심을 잡고 있었던 미연이는 누구나 인정하는 핵심 인재였다.


미연이가 겸손한 친구라 직접 말을 하지는 않지만, 다른 동료한테 듣기로는 일 잘하고 퍼포먼스가 좋아 회사 차원에서 키우려는 육성 구성원이 되었고, 그래서 갑자기 전사 프로젝트로 간 것이라고 했다.


미연이가 인정받는 연구원이었기에 그녀의 추천 한 번에 나도 기회를 얻을 수 있었겠지. 항상 미연이에게 감사하다.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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