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케이 Oct 22. 2022

내 아내 미주

제이케이 장편소설

긴 꿈을 꾼 것 같다.

미연이 덕분에 전 아내를 꿈속에서 다시 만났다.

내 전 아내 미주는 내가 회사에 급한 일로 출근했던 주말에 뱃속 아기를 만나러 혼자 병원에 가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연히 아내뿐 아니라 지난가을에 우리를 찾아와 준 고마운 우리 가을이도 미주와 함께 먼 길을 떠났다.

내 배웅도 없이 그렇게 둘은 가버렸다.

나는 내 전부였던 아내와 아이를 한순간에 잃었다. 그래도 미주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 아주 조금 위로가 될 뿐이었다.

오래 사랑하고 싶었다. 오래 고생해서 겨우 찾은 행복이었다. 한꺼번에 내 전부를 앗아간 것에 대한 분노로 모든 것을 원망했다.

하필 그날 내게 출근을 하게 한 회사 상사가 원망스러웠고, 하필 그날 병원을 오라고 한 산부인과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하필 그날 나들이를 나와 사고를 낸 한 가족이 원망스러웠고, 하필 그 건널목에 고장 난 신호등을 방치한 얼굴도 모르는 구청 담당자가 원망스러웠다.

하필 그때 운전자의 시야를 가린 크레인 기사가 원망스러웠고, 하필 그때 미주의 옆자리를 비운 내가 원망스러웠다.

내 스스로가 도무지 용서되지 않았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미주랑 처음 만나면서부터 최근까지 같이 갔던 곳을 하나도 빠짐없이 하염없이 다녔다.

항상 둘이 손을 잡고 다녔던 곳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나 혼자만의 억으로 억을 덧칠했다.

둘만의 추억을 간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게 벌을 줄 생각이었다.

첫 여행 장소인 부산부터 마지막 여행 장소인 속초까지. 추억이 깃든 곳을 한 군데씩 다녀오고 나면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쯤 지나 미주와 마지막으로 추억을 만들었던 속초에 갔다. 미주와 먹었던 음식들을 먹고, 미주와 갔던 설악산에 다녀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속초 해변 어느 한적한 곳에 주차를 하고 번개탄에 불을 피웠다.

소주를 한 병을 마시고 미주 사진과 우리 가을이 초음파 사진을 품은 채, 자동차 운전석 시트를 뉘었다.

술기운에 매우 졸린 와중에도 가스 냄새가 느껴졌다. 이제 미주랑 아이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두려움은 없었다.

술을 먹기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 없었다면, 조금 두려울 뻔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깊은 잠에 들 무렵,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멍청하게 세상 등지겠다는 놈이 전화기는 끄지 않았나 보다.

진동 모드인데도 주변이 아무도 없는 외진 곳이다 보니 진동소리가 벨소리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진동소리에 짜증이 나면서 정신이 또렷해진다. 그리고 술기운에 없어졌던 두려움도 돌아왔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미연이었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 고민하는 중에 가스가 내 폐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기침이 내 입에서 쏟아졌다. 헛구역질도 나왔다.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내 비겁하고 못난 손이 내 차의 문을 열었다. 바깥 공기는 시원했고 상쾌했다.

휴대전화의 진동은 내가 차에서 기어 나와 한참을 울고 난 후 전화를 받고 나서야 멈췄다.

'부재중 전화 38건'

내가 살 이유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살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했다. 죽음 문턱에서 비겁하게 살아 돌아왔지만 그렇게라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한참 동안 비겁한 겁쟁이라 자책한 후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미연이에게도 전화를 받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 일 없다는 듯 둘러댔다. 미연이가 화를 내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미연이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게. 그리고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게.

어느 순간부터 미연이를 미주가 보낸 수호천사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미연이의 말은 하기 싫어도 꼭 듣게 된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후 미연이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나를 추천했다. 그리고는 내게 무조건 다니라며 선택권 없는 통보를 했다.

미연이는 내 옆에서 마치 나를 어린아이 대하듯 지근거리에서 살폈고, 몇 달만에 내 삶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주가 꿈에 나온 것이다.

그래. 미주는 내 꿈속에 찾아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한 것이다.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래야 자신이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자기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동안 그렇게 애원해도 꿈에 한 번 안 찾아더니, 2년이 훌쩍 넘어 나타나서는 얼굴을 보여준 건 겨우 10초 남짓이다.

속이 좁아진다.
섭섭해서 눈물이 난다.

이제 정말 잊어야 하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2년도 더 지났는데도 서러움이 북받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미주가 정말 바라는 것이라는 걸, 미주를 위한 것이라는 걸 안다.

그때 휴대전화 진동소리가 들린다.

'오빠, 꿈 잘 꿨어? 이제 곧 숙면실 비워줘야 할 시간인데, 일어났으면 아점 먹으러 가자. 나도 이제 퇴근 가능!'

미연이다.

내게 항상 고마운 사람.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지탱해준 사람이다. 미연이 덕분에 내가 아직 살아있고, 앞으로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미연이의 밥 먹자는 말에 눈치 없이 배가 자기 배 고프다는 소리를 낸다.

내 마음과 배는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서로 처한 상황은 다른가 보다. 그래도 이제는 마음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배의 편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

이제는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미연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네가 있는 곳으로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이전 08화 꿈의 대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