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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22. 2022

고백

제이케이 장편소설

내가 오빠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에서였다.


그는 기계과 신입생이었고, 준수한 외모에 발표할 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오빠는 늘 많은 친구들과 함께 있었고, 항상 그들 중에서 리더 같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재수를 해서 신입생들보다 나이가 한 살이 더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 때마다 근처에 앉아 그를 지켜만 보았다. 불행하게도 조별 과제에서 같은 조로 묶인다거나 하는 특별한 기회 없이 학기 끝이 다가왔다.


지금이라도 고백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에게 다가가는 것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그와의 인연은 짧게 끝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년 뒤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던 그를 교내 취업스터디에서 다시 만났다. 기계과로 전과한 이후 친하게 지냈던 같은 과 친구 미주의 권유로 들어간 스터디였다.


기계과로 전과를 하고 그를 다시 만나길 기대했지만, 우연조차 비켜가는 운명의 장난처럼 다시 만난 적은 없었던 터다.


스터디에 처음 참석한 날,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미주와 그는 이미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그 사이에 낄 틈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둘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좋았다.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리더십 있고 따뜻한 그 옆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앞으로 이렇게만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둘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미주가 떠나던 날 나는 미주 곁에 있었다. 오빠가 주말 출근을 하니 산부인과에 같이 갔다가 점심을 먹자고 했던 그날. 둘이서, 또는 셋이서 종종 만났었기에 이번에도 아무 부담 없이 미주를 만나러 갔다.


병원 앞 고장 난 신호등 앞에서 미주를 기다리다 반대편에 다다른 미주와 눈이 마주쳤다. 미주는 오랜만에 만나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미주는 단보도를 건넜지만, 내게 닿지못했다.


하필 고장난 신호등 앞에 서 있던 나 때문에 이 사고가 일어난 것 같다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미주의 죽음 앞에 내가 있었다는 걸 그가 알게 될까 봐, 알게 된다면 그가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두려움이 더 컸다.


두려움 때문에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할 수 없었고, 죄책감 때문에 미주의 빈자리를 채우려 할 수도 없었다. 다만, 미주와 오랜 추억을 함께 한 자격으로 그를 위로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혼자 남은 오빠를 또 한 발자국 떨어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주가 울면서 꿈에 찾아왔다. 미주가 우리를 떠난 지 2년 만이었다.


더 이상 자신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 이제는 오빠 곁에서 오빠를 지켜달라고 했다.


미주에 대한 죄책감과 오빠에 대한 오랜 감정이 내 무의식 속에 남아 꿈으로 나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미주가 그 말을 하기 위해 내게 찾아온 거라고 믿는다.


미주가 그의 곁에 나를 허락하던 날, 아직 방황에서 돌아오지 못한 오빠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 보낸 메시지읽지 않았고, 전화받지 않았다.


오빠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이 나를 얼마나 불안하게 하는지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그를 내 곁에 붙잡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렇게 그를 우리 회사로 데려왔다. 더 방황하고 싶어 하는 그를 더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내 곁에서 그가 안정을 찾아가던 어느 날, 빠가 나를 찾아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꾼 꿈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을 때, 표정에서부터  미주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오빠가 방황할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우리 드림 프로젝트가 테스트에 성공한 무렵이었다.


오빠를 지켜야 했다. 그리고, 나를 지켜야 했다.

그렇게  며칠 후 오빠는 이마에 파란이 연결된 센서를 붙이고 잠이 들었다.


오빠는 숙면실에서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부은 눈으로 드림 프로젝트 사무실 앞으로 왔다.


꿈을 하도 많이 꾸어서 피곤한 탓에 눈이 부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지만, 나는 못 이기는 척 믿어 주었다. 퉁퉁 부은 눈에서 깊고 깊은 아픔이 보다.


점심 같은 아침을 먹으면서도 오빠의 기분은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고민이 많아 보였다. 밥을 같이 먹는 나를 배려한다고 하는 몇 마디 말에도 슬픔이 느껴졌다.

미주를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오빠는 내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종종 내게 주말을 빌려 주었고, 어디 혼자 지방에라도 갈 때면 꼭 미리 말해주었다. 전화기를 꺼놓지 않았고, 통화는 먼저 끊지 않았다. 메시지에 대한 대답은 5분을 넘기지 않았고, 가끔 말 끝에 '냐'를 붙이던 말투도 '니'라고 따뜻하게 고쳐주었다.


그렇게 이기정이라는 사람은 내가 그를 좋아한 지 10년이 훌쩍 지나고서야 내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드림 프로젝트는 오빠의 마음속에 내가 자리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 윤리위원회의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해체되었다.


뇌에 직접 정보를 입력 타인이 꿈을 조작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사라졌지만,


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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