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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Aug 29. 2023

요똥 며느리, 아버님 미역국 끓이기에 도전하다

 내게 지난주는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었다. 남편은 서울에 출장가서 집을 비웠고, 그러자마자 아이가 감기에 걸려 고열이 나기 시작했고, 어린이집에 못 가게 된 아이를 봐주러 올라오신 시아버님의 생신까지 닥쳤기 때문이다. 목요일, 나는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겁도 없이 아버님께 미역국을 끓여드리기로 결심했다.

     

 주부들은 말한다. 미역국은 정말 끓이기 쉽다고. 그러나 나는 그 대부분의, 평범한, 평균적인 주부에 해당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미역국이라곤 결혼 후에 처음으로 맞은 남편의 생일 때 끓여준 것이 다다. 진짜 그 한 번이 전부였다. 신혼 때야 내가 미역 대신 양반김을 넣고 김국을 끓여줘도 남편은 맛있다고 했을 거고, 아버님 생신은 경우가 다르다. 큰일이었다.

    

 잘한다는 집에서 사드리는 게 차라리 나을지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생일 미역국을 아주 중요시하는 어른들의 눈엔 과히 좋지 못한 행실로 보일 게 틀림없었다. 역시 맛이 없어도 직접 끓여드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일하는 틈틈이 레시피를 검색해 가장 쉬워 보이는 것을 골랐다.

    

 필요한 재료는 대강 다음과 같았다.

    

건미역

소고기

다진마늘

참기름(들기름)

국간장

소금

사골육수

참치액

    

 참치액??? 그런 건 우리 집에 없다. 그런 고급 조미료 같은 건 내 주방에 있어봤자 명이 다하도록 방치만 당한다. 이번에도 미역국 한 번 끓이고 손도 안 댈 것이 뻔했지만, 그래서 너무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요리 못하는 사람은 레시피를 마음대로 변형할 자유가 없다.

     

 건미역은 마침 얼마 전 아이의 생일에 어린이집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 있었고(고마운 선물이나 아이에게 미역국을 끓여주진 않았다. 편식 대마왕인 딸아이는 국을 입에도 안 대기 때문이다), 사골육수도 예전에 사놓은 곰탕으로 대체 가능해보였다. 다진마늘과 참기름, 국간장 정도는 그래도 주방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마트에서 참치액과 한우 국거리만 사서는 집에 오자마자 분연히 요리를 시작했다.

     

 음... 일단 미역을 바락바락 씻어서 불려 놓고.. 다진마늘과 참기름과 참치액과 소고기를 넣어서 오랫동안 볶으면 되는 것 같은데.. 다진마늘을 조금만 넣으면 된다는데 얼마나 넣어야 될지 감이 안 온다. 적당히 쬐금 넣자. 참치액은 한 숟갈만 넣으라는데 난 고기를 많이 샀으니 조금 더 넣자. 그리고 달달 볶으면 되겠지. 들들들 달달달...

    

 그리고 불린 미역을 넣고 또 볶는다. 불 앞에 서서 계속 볶으려니 꽤 덥고 힘이 든다. 슬슬 고소한 냄새가 올라온다. 이제 육수를 일부만 넣고, 끓어오르면 나머지를 더 붓는다. 그리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국간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국물이 탁해지니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하라고 한다. 시키는 대로 해보자. 음...간은 나름 괜찮은 것 같다.

    

 끓이는 시간까지 분으로 재서 딱 맞췄다. 어디 한번 비주얼을 보자.


 ...??


 왜 이렇게 건더기만 가득하고 국물이 없지? 육수가 부족했나 보다. 사골육수는 다 썼으니 물을 부어서 다시 끓이자. 보글보글... 이제 맛을 한번 보자.


 ...????


 왜 비리고 쓰지?

     

 아무래도 참치액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았다. 첫맛은 적당히 고소하고 간도 맞는데 뒷맛이 아주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이제와서 다시 끓일 수도 없었다. 아버님은 얼른 이걸 드시고 부산 시댁에 내려가셔야 했고 재료도 모자랐다. 일단 꽤 괜찮은 첫맛에 나의 사활을 걸고 반찬집에서 구입한 여러 반찬과 함께 국을 내어드렸다. 반찬 맛에 국의 뒷맛이 묻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어머님이 끓여주시는 것에 비하면 맛이 없겠지만 한번 드셔보셔요, 아버님.”

 나는 매우 쭈뼛거리는 어조로 밑밥을 깔며 아버님의 미각적 충격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시도했다. 나의 걱정스러운 눈길 속에 아버님이 국을 한 술 뜨시더니, 말씀하셨다.

 “맛있다.”


 아니? 의외의 반응이었다. 혹시 내 기분이 상할까봐 하얀 거짓말을 하시는 걸까? 아니다. 그게 아직 안 와서 괜찮으신 게 틀림없었다.

 ‘아마 조금 있다가 액젓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질 거에요 아버님...’

 나는 쭈글쭈글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버님은 중간에 한 번도 표정을 찡그리지 않고 국 한 그릇을 끝까지 다 드셨다. 다행스러웠지만 동시에 의아했다. 밥그릇을 보니 밥이 조금 남았기에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아버님, 국을 좀 더 드릴까요?”

 아버님은 잠시 티슈로 입을 닦으시더니 잠깐의 틈을 두고 말씀하셨다.


 “미역만 좀 더 줘라.”

 그럼 그렇지.

    

 국자로 미역을 푹 퍼 올리니 고기가 한가득 딸려 왔다. 아버님 몸보신하시라고 그걸 다 담아드렸다. 샤워하고 와서 다 드신 상을 치우며 보니 국그릇에 씹다 만 고기가 점점이 남아 있었다.

      

 고기는 뭐가 문제였을까? 참치액은 그렇다 치자. 고기는 왜 질겨졌을까. 너무 오래 볶은 걸까, 아니면 너무 오래 끓인 걸까. 애초에 국거리가 아닌 다른 부위를 샀어야 했을까.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만든 나도 고기 씹다가 턱이 나갈 뻔했다.  

   

 그러나 아버님은 다음 날 아침에도 나의 미역국을 드셨다. 나도 두 번 먹었다. 그리고 나니 냄비는 바닥을 보였다. 냄비 바닥이 그렇게 반가운 건 처음이었다.

    

 아마 자상하신 아버님은 며느리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액젓 국물과 사각턱 형성용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드셨을 터이다. 그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면 감사하고도 죄송하다.

    

 그래도 이번 시도로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한번 해봤으니 내년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땐 반드시 참치액이 안 들어가는 레시피를 고르고 고기도 더 좋은 부위를 살 테다. 그리고 아버님 뿐 아니라 어머님 생신에도 끓여서 위풍당당하게 들고 갈 것이다. 이번엔 미처 해드리지 못한 찰밥까지 해서 말이다. 양손에 푸짐하게 든 락앤락 통을 상상하며 일 년간 정진하도록.


(표지 사진 출처 :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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