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온 Mar 21. 2023

드디어 잠실 입성

9화


수서역에서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길찾기 앱을 켜 노선을 찾아보니, 수인분당선을 타고 선릉역에 내려서 2호선으로 갈아탄 후 종합운동장 역에서 하차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지하철 타는 곳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수인분당선이 나오지 않았다. 개찰구가 보이긴 했지만 3호선이었다. 나는 마치 9와 4분의3 승강장을 찾지 못해 헤매는 해리 포터가 된 줄 알았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가까스로 수인분당선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했다. 3호선과는 멀리 떨어진 데 따로 위치해 있어 찾기 어려운 곳이었다.     


광역시지만 지하철이 없는 도시에 사는 나는 개찰구를 보면 언제나 긴장한다. 얼른 교통카드를 꺼내 센서 판에 터치하니, 다행히 한 번에 정상인식이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플랫폼으로 향했다.    

 

열차는 금방 왔다. 안내방송대로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하며 내부로 들어섰지만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는 출입문 근처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가기로 했다.     


그때 신기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손잡이에 매달리고도 중심없이 휘청이는 나와 달리, 다른 승객들은 어떤 것도 잡지 않은 채로 서서 가는 것 아닌가? 대부분 두 손으로 폰을 들고 있거나,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로 아무렇지 않게 진동을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서울 사람들은 열차에서 완벽하게 균형 잡는 능력이 있구나. 오죽 지하철을 많이 탔으면 그런 능력을 터득했을까.     


얼마 있지 않아 나는 종합운동장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런데 역사의 넓은 공간으로 나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벌써 온통 팬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시즈니(엔시티 팬의 별명) 밭이었다.      


벌써 팬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들었다니. 일찍 올라오길 잘했다.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던 그들은 하나같이 투명한 비닐가방에 네온그린 색의 커다란 무언가를 넣어두고 있었는데, 바로 내가 염원하던 믐뭔봄(공식 응원봉)이었다.     


그 광경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벌써 저렇게 믐뭔봄을 산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사기 전에 품절이 되면 어쩌지? 나는 공연장을 향해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11번 출구였던 것 같다. 지상으로 올라오기 직전, 벽면에 멤버 태용의 거대한 사진이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팬들이 비싼 돈을 들여 걸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카리스마 가득한 표정을 한 태용의 사진은 아주 강렬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누구나 다니는 지하철역에 걸린 사진을 보니 그 인기가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주경기장으로 가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몰랐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출구에서부터 엄청난 행렬이 오로지 한 방향만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얼른 그들을 따라갔다.     


믐뭔봄을 파는 곳은 주경기장 옆의 보조경기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주든 보조든 어찌나 먼지, 걸어도 걸어도 경기장이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 공연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지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저 멀리 드디어 게이트가 보였다.      

멀리서 바라본 잠실주경기장 전경. 콘서트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조경기장은 게이트를 지나고도 한참을 더 걸어가야 했다. 배는 고프고 어깨는 무겁고 다리는 아프고, 전부 쌩쌩하게 소리높여 떠들며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는 주위의 다른 팬들 속에서 나는 이질적인 존재 같았다.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이었나.


그런데 갑작스레 시야가 환해지더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운동장이 나타났다. 마침내 보조경기장에 도착한 것이다.


보조경기장에 설치된 '(NCT) 127 ZONE' 조형물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에는 어림잡아 몇천 명은 되어 보이는 팬들이 모여 있었다. 수백 명의 팬들이 MD(일종의 굿즈) 판매대 앞에 줄을 서 있었고, 또 수백 명은 관람석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수십 명 정도는 멤버들 사진이 인쇄된,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크기의 배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배너 앞에 줄서 있는 팬들


나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인파에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믐뭔봄을 판매하는 부스를 찾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면서 눈에 들어온 팬들의 모습은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엔시티의 상징색인 네온그린 옷을 입고 온 사람도 있고, 멤버 이름이 적힌 머리띠를 한 사람, 폰 뒷면을 온통 엔시티 스티커로 도배한 사람, 배낭에 열쇠고리를 매단 사람 등등 팬심을 드러내는 도구도 다양했다.

애매한 가을 날씨인 만큼 미니스커트를 입은 사람, 바람막이를 입은 사람부터 니트를 입은 사람까지 옷차림도 가지각색이었다. 나만큼이나 커다란 가방을 메고 온 사람들도 꽤 많았다.


길게 줄을 선 인파 때문에 부스 이름이 보이지 않아, 믐뭔봄 판매처를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곳을 발견하자마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품절되면 안 돼. 머릿속엔 그 생각밖에 없었다.     


- 10화 <응원봉 사려다 겪은 시련>에서 계속됩니다

이전 08화 나를 당황시킨 집배원 아저씨의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