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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Jul 11. 2023

현실과 동화 사이에 선 자매들

<작은 아씨들> 감상문 두 번째

이 글을 포함한 3개의 글은 소설 <작은 아씨들>에 대한 감상문입니다. 1부에는 소설 1부를 중심으로 책에 얽힌 저의 개인적인 추억담을, 2부는 소설 2부에 관해 주로 다루며 자매들의 성격에 관한 이야기를, 3부에는 오늘날 작품이 갖는 의미와 한계에 대해 써보았어요.

① 연한 초록 책과 분홍 상자
② 현실과 동화 사이에 선 자매들
③ <작은 아씨들>, 팬 혹은 안티     


찬사와 헌사만을 쏟아낼 수 있었던 1부와 달리 <작은 아씨들>의 2부는 내가 쉬이 좋아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자매들이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연애 감정을 겪으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보니 1부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한마디로 1부보다 덜 동화 같고 더 현실적이었다.

     

피터팬도 아니고, 현실적인 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건 내가 워낙 이상향을 꿈꾸기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매들 중 가장 반대의 성향인 두 사람의 관계에 제대로 감정이입 했기 때문이다. 그 둘은 당연히, 조와 에이미다.

         

조 vs 에이미  

   

네 자매 모두가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조와 에이미는 그 중에서도 비중이 가장 높다. 특히 소설 2부는 이 두 사람과 로리의 이야기가 큰 뼈대를 이룬다.      


조와 에이미는 유년 시절에도 티격태격하거나 때로는 심하게 싸우기도 했을 만큼 서로에게 상극이었다. 그들의 성격과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화를 여기 소개해본다.     


에이미 : 평범하고 가난한 우리가 싫어하는 신사들에게 얼굴을 찡그리고, 좋아하는 신사들에게 미소를 보낸다고 그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할 줄 알아?

조 : 미인도, 백만장자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계속 참고 봐야 한단 말이야? 정말 대단히 양심적인 삶이구나.

에이미 :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란 거야. 그 이치를 어기는 사람은 비웃음만 당할 뿐이야. 난 혁명가를 싫어하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아.

조 : 난 혁명가를 좋아해. 될 수 있다면 되고도 싶고. 넌 가장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 난 가장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살 테니.


나는 처음 에이미의 저 대사를 읽고 좌절했다. 나의 아름다운 천국 이야기에서 이토록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대사가 나오다니. 그뿐이 아니었다. 에이미는 내가 얄미워하는 여자들의 모든 속성을 다 갖추고 있었다.


‘특히 에이미는 이 영웅들과 어울리길 좋아했고, 어느새 그들 사이에서 여왕이 되었다. 어엿한 숙녀인 에이미는 이미 자신이 가진 매력을 잘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조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결코 사랑을 느끼지는 않았다. 반면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에이미에게는 모두 사랑의 감정이 담긴 찬사를 보냈다.’


‘에이미는 원체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라서, 아무 노력 없이도 남을 즐겁게 할 수 있었고 누구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삶이 너무나 편하고 쉽게 흘러가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에이미가 행운의 별 아래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인용한 문구는 모두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작은 아씨들에서 발췌)     


그렇다. 난 솔직히 에이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절대 부러워서는 아니다) 특히 1부에서 고작 연극에 데려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의 원고를 태운 일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한 행동을 통틀어서 가장 못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얄밉고 이기적인 에이미가 2부에서는 완전히 공주님이 된 것이다!     


따져보면 네 자매 중에서 원했던 것을 진정으로 이룬 사람은 에이미 한 명 뿐이다. 메그는 사랑을 택한 대신 화려함을 포기했고, 베스는 요절했고, 그럼으로써 조는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잃었다. 그런데 에이미는 사랑과 부를 다 쟁취했다. 그녀만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얻는다며 조가 불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조에 더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에이미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내 눈에 그녀는 너무 완벽했다. 영리하고, 아름답고, 재능있고, 상냥하고, 야무지고. 2부를 제대로 된 완역본으로 처음 읽었을 때가 한창 여성으로서의 자존심이 중요하던 20대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흠잡을 데 없이 매력적인 에이미의 모습에, 독자와 소설 속 인물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은 열등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2부를 끝까지 읽었다면 누구나 의아해했을 그 사실 때문에 에이미에게 더 등을 돌리게 됐다. 바로 로리가 조가 아닌 에이미와 결혼했다는 사실 말이다!    

 

로리와 두 자매     


대체 조는 왜 로리를 거절한 것인가.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내 두 눈을 의심할 만큼 충격이 컸다. 그렇게 완벽한 사람을, 굴러들어온 복을 제 발로 걷어차 버리는 저런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소설 2부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의 60프로는 이 사건 때문이다. 나와 이십년지기 친구 한 명은 언제든 작은 아씨들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도대체 작가는 왜 로리와 조를 연결해주지 않은 거냐며 씩씩거린다.  

   

로리가 ‘처음 안 순간부터 줄곧 너를 좋아해 왔어’라고 조에게 고백할 때 나는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그리고 곧장 상상의 날개를 활짝 폈다.      


로리는 여성스러운 행동이라고는 질색하는 조에게서 우연히 부드럽고 온화한 면을 발견한 것이 분명하다. 또 그녀의 탐스럽고 매끄러운, 누구나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머릿결을 보며 감탄과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연애라면 질색하며 철벽 치는 조를 보며 혼자 가슴앓이 했을 게 틀림없다. 아, 너무 낭만적이다!


그런 로리를 조가 단칼에 거절해버린 건 독자에게, 그리고 같은 여자에게 명백한 배반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로리는 조한테 거절당하자 당장 죽기라도 할 듯이 괴로워하더니, 얼마 되지도 않아 여우 같은 에이미한테 빠져 결혼해버리다니! 그건 결코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나의 <작은 아씨들>은 이렇지 않았다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최근에 2부를 다시 읽으니 그런 아쉬운 감정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예전과 달리 에이미는 본받을 점이 많고 성숙한 여성으로, 로리를 거절한 조의 선택도 이성적이고 현명하게 보였다. 심지어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던 에이미와 로리의 로맨스도 꽤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게 아닌가.


 아마 이런 변화는 나 자신이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아가씨 시절처럼 맹렬하게 매력적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기에, 에이미든 누구든 잠재적인 경쟁상대로 느끼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소설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달라진 시각으로 바라보니 에이미가 매우 강하고 영민하며 세련된, 아주 멋진 여성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딸도 꼭 에이미처럼 키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조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딸아이만큼은 에이미처럼 자라서 인생을 편하게 살길 바라니까 말이다.  

   

또 소설 끝자락에서 몸이 약한 자신의 아이를 보며 마음 아파 눈물을 흘리는 에이미의 모습에, 다 가진 것처럼 보이던 그녀에게도 근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해묵은(그리고 일방적인) 나의 심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허구인 걸 알면서도 그녀의 아이가 건강하기를 빌게 되었다.  


고결한 베스     


사랑과 현실의 균형을 멋지게 맞춘 에이미와, 가난하지만 훌륭한 남편을 위해 꿈꿔오던 안락함을 포기한 메그와 달리, 조와 베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하게 이상의 세계에 남았다.     


특히 베스는 이 소설의 감동과 교훈과 아름다움에 대한 지분이 가장 큰, 누구보다 고귀한 인물이다.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1부에서 등장하는 로렌스 할아버지와의 우정은 깨끗한 샘물처럼 맑고 순수해서 내 마음까지 정화해주는 듯했고, 베스가 모두가 귀찮아하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을 하다 병을 얻었을 때는 가슴속에 파도처럼 연민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작가인 올콧 여사는 두 번째로 내게(아마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에게도) 실컷 비난을 받았으니, 이 사랑스러운 베스가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작은 아씨들> 판본은 먼젓번 글에서 얘기한 소담출판사 판 외에 어린이용 축약본으로 나온 것도 있어서 초등학생 시절에 번갈아 읽곤 했는데, 그 책의 문장 손질을 담당한 작가분이 베스의 죽음을 아주 감동적으로 묘사했던 것이 떠오른다. 바로 이 문장인데 원서에도 나오지 않는, 작가분이 창작한 것이다. ‘베스의 깨끗한 영혼이 하나님께 불려간 날’ 이라는 표현이다.      


나는 무교임에도 이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깨끗한 영혼’이라는 단어만큼 베스에게 어울리는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린이용 책에서 조의 슬픔을 어찌나 간결하면서 절절하게 잘 옮겼던지, 어린 나는 책장이 젖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저번 글에서도 그렇고 유독 울었다는 얘기가 많은데요.. 워낙 감수성 예민했던 시절이었겠거니, 생각해주셔요☞☜)    


또 조가 죽은 베스의 꿈을 꾸고는 자다 일어나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제발 돌아와달라고 울부짖는, 아주 가슴 아픈 장면도 있는데 그 삽화도 무척 펐다.

    

마지막으로 조가 동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사가 있어 여기 옮겨본다.

“메그 언니는 나만큼 베스를 사랑하지 않아. 베스는 내 양심이야. 그 아이를 포기할 수 없어!”    

 

- 3부  <작은 아씨들>, 팬 혹은 안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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