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라의 평원군(미상~기원전 251년)은 제나라의 맹상군, 조나라의 평원군, 위나라의 신릉군, 초나라의 춘신군은 각각 식객을 3천 명을 거느린 전국(戰國) 시대 사공자로 불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승입니다. 평원군은 조나라의 혜문왕과 효성왕 때에 재상으로 있었습니다.
평원군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 모수자천(毛遂自薦), 모수가 스스로 추천함
당시 시대 상황은 강한 진나라가 나머지 여섯 개의 나라를 위협하고, 이로 인해 전쟁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진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공격하자, 위기에 처한 조나라는 초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합니다. 막중한 임무를 맡은 평원군은 자신의 식객 중 뛰어난 20인을 뽑아 가기로 계획하였으나, 나머지 한 명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이때,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추천하며, 사신의 일행에 끼워주기를 요청하였습니다.
평원군은 뛰어난 이는 송곳과 같아 주머니 속에 있더라도 금세 드러나게 되어 있다(囊中之錐)는 비유를 들면서, 모수가 3년이나 자신의 식객으로 있었으나, 자신이 모수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으므로, 능력이 없는 것으로 단정합니다. 그러나, 모수는 자신이 아직 주머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며,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 송곳의 자루까지 밖으로 나올 정도로 능력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자, 평원군은 마지못해 모수를 데리고 가기로 결정합니다.
드디어, 초나라에 당도한 평원군 일행은 초나라의 왕을 설득하고자 하나, 오전 내내 결정을 하지 못하고 논의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수가 당당히 나서서 초나라가 진나라에게 당한 수치와 모욕을 언급하며, 조나라의 제안이 결국 초나라에게 유리한 일임을 설파하자 초나라 왕이 설득되었고, 평원군 일행은 사신으로서의 임무를 성공리에 마치게 됩니다.
초나라는 약속에 따라 구원군을 보냈고, 위나라도 같이 군대를 보냈으나, 미처 구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진나라의 군대는 재빨리 수도 한단을 포위함으로 조나라는 풍전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평원군이 크게 걱정을 하는 동안, 관청 숙소를 관리하는 자의 아들인 이동이 평원군에게 말합니다.
지금 진나라의 포위된 한단 내에 백성은 땔감이 없어 사람의 뼈로 불을 지피고, 식량이 없어, 자식을 바꾸어 먹고 있는데, 평원군의 후궁과 노비들은 쌀밥과 고기를 먹고, 비단옷으로 즐기고 있음을 지적하고, 수도를 지키기 위해 무기가 없어, 나무를 깎아 창과 화살을 만들고 있는데, 평원군의 집안에 금속으로 만든 각종 기물과 악기는 그대로 있음을 지적합니다. 조나라가 멸망하면, 이 모든 것이 소용없을 터이니, 사람들을 풀어 먹을 것을 나누고, 일을 나눈다면 병사들이 감사함을 느낄 것이라고 조언을 합니다.
이를 들은 평원군은 이동의 말대로 실천하여, 용맹한 군사 3천으로 진나라와 싸워 진나라 군대를 물러나게 하고, 구원군이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한단을 무사히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평원군은 모수의 일로 인해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을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 대하여는 평판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능력을 정확히 반영하는지는 직접 확인을 해보는 것이 중요함을 낭중지추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나라의 위기 상황에도 많은 귀족들은 자신의 재산에만 신경을 쓰고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그 재산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라가 보존되는 것이 선결조건임을 잊어버리는 것이며, 나라가 없으면 그 귀족도 결국 포로의 위치가 되어 그 지위와 재산을 모두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평원군은 충언을 지혜롭게 받아들여 나라를 먼저 생각하므로, 자신의 지위도 지키게 되었습니다.
평원군은 사대공자 중 가장 평범한 인물로 평가 받기도 하였지만, 사람을 쓰는 능력과 충언을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