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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담 Aug 15. 2023

충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못 알아보는 것이다.

[사기열전 굴원 편]

중국 단오절(음력 5월 5일)은 굴원으로 인해 유래되었습니다. 초나라의 신하 굴원(기원전 343년~기원전 278년)이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은 날을 기념해서, 사람들은 용모양의 용주(龍舟)를 타고, 경기를 하며, 사람들은 쫑즈(대나무 잎으로 싼 찹쌀밥)를 먹습니다. 용주 경기는 굴원 시체를 강물에서 빨리 꺼내는 것을 상징하며, 쫑즈는 굴원의 시체를 물고기가 먹지 못하도록 밥을 말아서 강물에 뿌린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굴원은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충신이자 애국자입니다. 그는 시인으로서도 유명했고, 경험과 능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관직에서 쫓겨난 굴원


굴원은 초나라 회왕시대에 좌도로서, 왕의 주위에서 조사나 명령을 내릴 때 초안을 잡고, 외교적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회왕이 굴원에게 법령을 만들도록 하였을 때, 상관 대부 근상이 그 초안을 빼앗고자 하였으나, 굴원이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근상은 굴원이  자신이 아니면 법령을 제대로 만들 사람이 없다고 하며 공을 자랑하며 다닌다고 말로, 왕에게 모함을 했습니다. 회왕은 이를 듣고 굴원을 멀리하고 벼슬자리에서 내쫓았습니다.

 


진나라에게 속은 초나라


당시 진나라는 제나라를 치고자 하였으나, 제나라가 초나라와 연맹을 맺고 있어,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진나라 왕은 장의를 초나라에 보내 진나라 땅 600리를 줄 테니, 초나라와 관계를 끊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욕심이 난 초나라 회왕은 국교를 단절을 선포해 버리자, 제나라는 분개하고 도리어 진나라와 화친을 맺습니다. 초나라는 진나라에 약속된 땅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약속을 한 장의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지막에는 600리가 아니라 6리만 주겠다고 말을 바꿉니다. 대로한 회왕은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에 쳐들어 가지만, 진나라는 제나라와 협력하여 초나라 군사 8만 명과 장수를 죽였으며, 한중 땅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회왕은 전군을 모아 진나라를 공격하자, 주변의 위나라와 한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고, 국교가 단절된 제나라는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해에 초나라의 협력이 필요한 진나라가 한중 땅 반을 돌려주며 초나라와 화친을 꾀하자, 초나라 회왕은 땅은 필요 없고, 장의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장의는 호기롭게 사람 하나가 한중 땅을 대신할 수 있다면 기꺼이 초나라로 가겠다고 하며, 초나라로 향했습니다. 회왕에게 잡힌 장의는 다시 초나라 왕의 신하 근상과 애첩 정수에게 많은 예물을 주고, 모략을 통해 다시 빠져나오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굴원은 회왕에게 장의를 죽이라고 하였지만, 이미 장의가 멀리 떠나가 버린 후였습니다.


그러부터 12년 후에 진나라는 초나라를 침략하여 땅을 빼앗고, 일전에 초나라 태자가 진나라의 볼모로 있다 진나라 대신을 죽인 것을 핑계 삼아, 진나라 땅에서 회동을 제안하고 그 자리에서 약속을 하자고 합니다. 그러자 굴원은 극구 반대하였으나, 왕자인 자란이 적극 권하여 회왕을 진나라로 가도록 합니다. 진나라에 도착하자 진나라는 회왕을 가두고 초나라의 땅을 요구합니다. 이를 거절한 회왕은 진나라에 잡혀 지냅니다. 그동안 초나라는 왕이 없는 것을 걱정하다가 제나라에 있던 태자를 불러들여 왕을 세우게 됩니다. 회왕은 몰래 조나라로 달아나지만, 진나라를 두려워한 조나라에서 거부하자 진나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진나라 땅에서 병이나 죽게 됩니다.


[춘추전국시대 지도/출처 Doopedia]

 


멱라강에 몸을 던진 굴원


영윤 자란은 상관대부와 짜고, 회왕을 이은 경양왕 앞에서 굴원을 헐뜯어, 왕이 굴원을 멀리 내쫓게 하였습니다. 굴원은 강가에 이르러, 혼탁한 세상에 대하여 한탄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원망하며, 시를 지었습니다. 그중의 일부를 보면,


흰 것을 검다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고 하고,

봉황은 새장 속에 갇혀 있고, 도리어 닭과 꿩은 하늘을 날고 있네.

.....

세상이 어지러워 자신을 알지 못하니, 자신도 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으니 슬퍼하지 않기로 하자.  

.....


그리고는 굴원은 돌을 안고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사마천은 회왕은 충신과 간신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굴원을 멀리하고, 애첩인 정수에게 미혹되고, 나라 밖에서는 장의에 속고, 상관대부 근상과 자란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초나라는 많은 땅을 잃었고, 진나라에 잡혀가 타지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굴원 이후 초나라는 직접적으로 간언을 하는 신하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단지 한 시대의 회왕이라는 개인의 불행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불행이었으며, 초나라는 굴원의 죽음 이후 쇠약해져서 수십 년 뒤에 결국 진나라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초나라에는 충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충언을 듣는 귀와 충신을 알아보는 눈이 없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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